아름다움은 추하다
우리는 지배 권력에 훈육되지 않는 우리 삶의 속성을 길러야 한다.
-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 (1926-1984, 프랑스의 철학자)
옛날에는 산적이 나왔다는 ㅎ 고개를 자전거를 끌며 올라가다 버스 정류장의 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
옆에서 버스를 기다리면 한 할머니가 “자전거가 참 좋네요.” 하신다. 나는 웃으며 “네.”하고 대답했다.
할머니는 수영장에 가려 버스를 기다린다고 했다. 나는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 데요?”하고 물었다.
90세란다. ‘와, 90세에도 수영을 하시는구나!’ 90대 어르신들을 뵈면 기분이 좋다. ‘나도 잘 하면 저 나이까지 살 수 있겠지? 그럼 나는 20여년이나 더 살 수 있잖아.’
장수(長壽)는 얼마나 큰 복인가! 할머니는 “90세가 되니까 세상이 다 아름답다”고 하신다.
그럴 것 같다. 90년 이상을 이 세상에 살다보면, 세상사 다 품을 수 있을 만큼 마음이 넓어질 것 같다.
여성들은 다 ‘대모신(大母神)’이 될 것 같다. 어제 공부 모임에서 한 회원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20대 초반의 딸이 헬스클럽에 갔는데, 남자들이 자신의 몸을 유심히 보더란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면 다들 고개를 휙 돌리고.
아마 이게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풍경일 것이다. 왜 젊은 여자는 어디가나 관심의 대상이 될까?
옛날에도 젊은 여자에게는 뭇 남성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을 것이다. 나의 고향 상주에는 민요 ‘공갈못 노래’가 있다.
가사 중에 ‘모시야 적삼 반쯤 나온/연적 같은 저 젖 보소/많이야 보면 병난다네/담배씨만치만 보고가소’가 기억에 남아 있다.
문제는 ‘현대 남정네들이 많이야 봐서 병나는 것’일 것이다. 여자의 성(性)을 과도하게 상품화한 물신주의 때문이다.
시선의 대상이 된 젊은 여자와 시선의 주체가 된 모든 남자들. 모두 병이 나게 된다.
젊은 여자만 아름답다고 하게 되면, 모든 다른 여자들은 추하게 되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젊은 여자들도 언젠가는 추녀가 된다. 그 두려움으로 젊은 여자들도 추하게 된다.
얼마나 참담한 일인가! 그래서 젊은 여자들은 늙지 않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모든 여자가 아름다워지려면, 푸코가 말하듯, “우리는 지배 권력에 훈육되지 않는 우리 삶의 속성을 길러야 한다.”
우리 삶의 속성은 어떨까? 우리의 마음을 고요히 하고 세상을 보면 다 아름답다. 우리의 삶 자체가 아름답기에 세상도 다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나는 오래 전에 늙은 여자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경험한 적이 있다. 전철역 대합실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몸이 이상했다.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때 사람들이 나의 위급함을 보고 다들 도움을 줄 줄 알았다. 그때 도움을 준 사람이 바로 늙은 여자였다.
중년 남녀, 젊은 남녀, 어린 아이 모두 나를 외면하던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늙은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게 도움을 주었다.
노자는 말했다. “천하 사람들 모두 아름다움을 알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데 그것은 추하다.”
젊은 여자만 아름답다고 하게 되면, 결국에는 모든 여자뿐만 아니라 모든 남자, 삼라만상이 추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이 다 아름다워야 젊은 여자도 아름다울 수 있다. 우리는 젊은 여자만 아름답다는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간의 피로 더럽혀진 손으로
독재자들이
못된 짓을 저지르는 동안에
늙은 여자들은
아침이면 일어나서
고기와
빵과
과일을 판다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한다
무슨 일이 나건
쳐다보고만 있다.
늙은 여자들은
죽지도 않는다.
- 타데우슈 루제비치, <노파에 대한 이야기> 부분
‘인간의 피로 더럽혀진 손으로/독재자들이/못된 짓을 저지르는 동안에’ 모든 남자들은 누구나 독재자들이다.
겉으로 보면 독재자들인 남자들이 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것 같지만, 실은 그 이면에서 늙은 여자들이 우리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그녀들은 이 세상을 쳐다보고만 있다. 마치 태양이 이 세상을 굽어보듯이. 그녀들은 계속 부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