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사랑한다는 것
우리는 현실을 만들어가는 존재이며, 그 현실을 만들어가는 능력이라는 것이 우리의 자유다.
- 질 들뢰즈 Gilles Deleuze (1925-1995, 프랑스의 철학자)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남들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에게 사랑을 줄 수 없다. 그의 허약한 마음은 남에게 폭력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은 누구인가?’이다. 어제 공부모임에서 한 논술강사가 아이들에게 수업한 얘기를 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단다. “너희들은 네 자신을 사랑하니?” 그러자 다들 “네.”하고 대답하더란다.
그녀는 다시 물어보았단다. “그럼 너희들은 사랑하는 자신들을 위해 오늘 무엇을 해 주었니?”
그러자 아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멀뚱히 쳐다보며 웃더란다. 그녀는 “유튜브 마음껏 봐주는 일을 했니? 아니면 게임을 몽땅 해 주었니?”
그녀의 말에 아이들은 다시 까르르 까르르 웃기 시작했단다. 아이들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을 것이다. ‘정말 나 자신을 사랑한 건가?’
아이들이 유튜브를 하고 게임을 하는 것도 자신을 사랑해서다. 하지만 아이들은 무의식중에 알고 있다.
그런 것들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럼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뭘까?
여기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인간에게는 두 개의 나가 있다.
자아(自我, ego)와 자기(自己, self)다. 아이들이 유튜브를 하고 게임을 한 것은 자아에 대한 사랑이다.
그래서 그러한 자신에 대한 사랑은 그 당시에는 강렬하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았던 것이다.
진정한 자신에 대한 사랑은 ‘자기애(自己愛)’다. 자기, 영혼은 우리가 감동을 받을 때 드러난다.
‘아름다움’을 만났을 때 우리는 전율한다. 이 전율하는 나가 자기다. 이때 우리는 위대해진다.
마음이 충만해져 남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은은한 행복이 그를 감싸게 된다.
따라서 인간은 계속 더 나은 자신을 창조해야 한다.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들뢰즈는 말했다.
“우리는 현실을 만들어가는 존재이며, 그 현실을 만들어가는 능력이라는 것이 우리의 자유다.”
인간은 언제나 더 나은 삶을 꿈꾼다. 그 결과 찬란한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다. 정체되어 있는 자신은 진정한 자신이 아니다.
인간은 항상 현실을 극복해 가야한다. 계속 더 나은 자신을 발명해가는 것, 이것이 ‘인간의 삶’이다.
현대인들이 온갖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것은 현실에 안주하기 때문이다. 눈부신 물질문명이 주는 안락감에 자신을 맡기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을 진화시켜왔다. 동물은 자신을 진화시키는 기간이 길다. 오랜 세월이 흘러야 더 나은 모습으로 진화한다.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은 생각의 힘에 의해 지금 당장 더 나은 자신으로 진화할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너의 자유로운 혼이 가고 싶은 대로
너의 자유로운 길을 가라.
너의 소중한 생각의 열매들을 실현하라.
그리고 너의 고귀한 행동에 대한 아무런
보상도 요구하지 말아라.
보상은 바로 제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 푸쉬킨, <시> 부분
우리가 진정한 자신, 자유로운 영혼이 가고 싶은 대로 가면, 우리는 언제나 충만한 행복 속에 있게 된다.
하지만 우리 대다수는 자아가 가고 싶은 대로 간다. 그래서 우리는 늘 목이 마르다.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