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고문
희망(希望)이란 말 그대로 욕망에 대한 그리움이 아닌가.
- 기형도 奇亨度 (1960-1989, 대한민국의 시인)
한국영화 ‘행복의 나라’를 보았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8년 전, 달려오는 전동차에 뛰어들어 자살하려던 자신을 구하고 운명을 달리하게 된 친구 진우, 그는 사법고
시에 합격한 3대 독자였다.
민수는 그의 제사에 매번 참석한다. 다른 가족들은 그를 냉대하지만, 희자(진우 어머니)는 아들을 대하듯 친절하게 대한다.
하지만 민수는 그런 희자를 마주하는 게 버겁다. 그래서 그는 희자에게 이제 앞으로는 제사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희자가 묻는다.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하지 않아?” 민수가 대답한다. “그럼 제가 언제까지 와야 돼요?” 희자는 그런 민수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집으로 돌아온 민수는 넋이 나간 듯하다. 아내가 그에게 말한다. “당신 무언가에 씌인 듯해.”
민수는 언젠가 자신에게 명함을 준 무당을 찾아간다. 민수는 무릎을 꿇고 무당에게 애원한다. “선생님, 제발 저를 살려 주세요. 살고 싶어요.”
민수는 진우 집에 찾아가 진우의 옷가지들과 진우의 사진을 들고 나온다. 그의 차를 희자가 몰래 따라온다.
민수는 산 속으로 들어가 발가벗은 채 진우의 옷가지들과 자신의 옷들과 진우 사진과 부적을 쌓아놓고 불을 붙인다.
뒤따라온 희자가 아우성을 치고 민수는 그녀를 밀어 넘어뜨린다. 쓰러진 희자를 그냥 두고 산을 내려온 민수.
민수의 삶이 왜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을까? 그는 심한 희망 고문에 시달렸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어떤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뜻대로 되지 않고 그는 결국에는 자살하려는 결심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의 삶은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다. 기형도 시인은 말한다. “희망(希望)이란 말 그대로 욕망에 대한 그리움이 아닌가.”
희망은 글자 그대로 ‘욕망(望)을 찾아가는(希) 것’이다. 민수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욕망은 도외시하고, 세상이 부여하는 어떤 희망을 갖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는 항상 빈껍데기로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요즘 많은 청소년들이 자살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그들 자신들의 욕망이 아닌, 이 세상의 욕망에 따라 살아가게 한 이 세상이 범인이다.
그는 다시 산에 가보았지만, 희자가 사라졌다. 희자는 구조되어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것이다.
민수는 희자의 병실에 들어가 희자의 인공호흡기를 뗀다. 그때 간호사가 들어오고 민수는 침대 밑에 숨는다.
민수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민수의 장례식에 나타난 희자, 그녀는 편안해 보인다. 그녀의 희망이 이루어진 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의 무의식도 편안할까? 그녀는 앞으로 알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희망을 이룬 아들에게서 희망을 찾으려는 그녀는 결국 희망 고문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행복의 나라’는 행복의 나라로 가려는 사람들은 모두 희망 고문을 당하게 되고, 결국에는 불행의 나라로 가게 되는 생(生)의 이치를 섬뜩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모든 자연은 작업 중이야. 민달팽이들은 자신의 은신처를
떠나고-
벌들은 웅성거리고- 새들은 날고,
그리고 허공에서 잠자는 겨울은,
미소 짖는 자신의 얼굴에 봄의 꿈을 띠지!
- S.T. 코울리지, <희망 없는 작업> 부분
자연은 언제나 작업 중이다. 그들의 작업은 늘 ‘희망 없는 작업’이다.
그들은 오로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있다. 그들의 희망 없는 작업이 천지를 창조하고, 천지자연을 운행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