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도덕을 찾아서
생각을 거듭할수록 감탄과 경외로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의 머리 위에 ‘별이 총총히 빛나는 하늘’이며, 다른 하나는 ‘내 안의 도덕법칙’이다.
-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1804, 독일의 철학자)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들이 계속 나타난다. 가장 흔한 것은 소음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몇몇 개념 없는 사람들이나 라디오를 크게 켜고 다녔는데, 이제는 누구나 스마트폰을 갖고 다니게 되면서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여기서 뽕짝이 들리고 저기서 아이돌의 노래가 들려온다. 어떤 사람은 뉴스를 열심히 듣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남들이 싫어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가? 아마 설령 그런 생각이 났더라도 ‘남들도 하니까!’ 무심코 하게 될 것이다.
‘무법지대 만들기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한숨을 내쉬며 ‘좀 쉬어 가자’하고 벤치를 보면, 벤치 위에 개 발자국들이 들국화 꽃들처럼 찍혀 있다.
저쪽 벤치에서는 한 젊은 여자가 애완견을 벤치 위에 올려놓고 있다. 다음에 사람이 앉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가?
이제는 눈 감고 귀 막고 살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자신 속으로 깊이깊이 침잠해야 살아갈 수 있는 참담한 세상이 되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살아가야 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 학창 시절에 진화론을 배워 우리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다.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알아서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18세기 서양의 눈부신 산업화를 지켜본 철학자 칸트.
그는 근대의 도덕철학을 정립하려 했다. ‘신(神) 중심의 중세가 무너지고, 인간이 중심이 된 시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급작스럽게 형성된 도시는 혼란의 도가니였다. 지금의 한국의 도시들과 비슷했을 것이다.
공동체 사회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익명의 도시에 살게 되면서, 자유의 공기를 마음껏 마시게 되었지만, 자유를 누릴 의식구조는 형성되지 않았다.
칸트는 오랜 성찰 끝에 도덕 감정의 근원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감탄과 경외로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의 머리 위에 ‘별이 총총히 빛나는 하늘’이며, 다른 하나는 ‘내 안의 도덕법칙’이다.”
그는 인간은 하늘의 범칙과 자신 안의 도덕 법칙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어디서 “왜 개똥을 치우지 않고 그냥 가세요?”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온다.
뒤이어 “다시 와서 치우려 했어요. 그래서 흙으로 덮어 놓았잖아요.”하는 애원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공원 구석구석을 잘 살펴보면, 개똥들이 여기저기 늘려있다. 그렇게도 애완하는 개가 남들에게 욕먹는 것이 걱정도 되지 않는가?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왔기에, 한 개인이 도덕을 어기며 살아간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남들의 눈이 무서워 다들 선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이 감시의 눈이 사라진 시대, 칸트는 우리 내면에서 감시의 눈을 찾아낸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내면의 눈을 무시하고 살아가면 어떻게 되나? 그래서 근대 이후의 사회에서는 도덕교육이 아주 중요해졌다.
내면의 양심을 깨우는 도덕교육이 필수 교과목이 되었다. 어떤 방법으로 도덕 감정을 깨워야 할까?
칸트는 인간의 타고난 미(美)에 대한 감수성이 도덕 감정을 깨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정신세계는 크게 세 영역으로 나눠진다. 진(眞)을 추구하는 학문, 선(善)을 추구하는 종교, 미(美)를 추구하는 예술.
이 세 개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진을 추구하는 학문이 우리의 모든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선과 미가 사라졌다. 지식 위주의 입시교육을 넘어 도덕교육과 예술교육이 교육의 중심에 서지 않으면, 우리사회는 ‘헬조선’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이발관 냄새는 나로 하여금 문득 쉰 소리로 흐느껴 울게 한다.
내가 오직 바라는 건 돌이나 양모처럼 가만히 놓여 있는 것.
내가 오직 바라는 건 더 이상 상점들을 보지 않고
상품, 광경들, 엘리베이터들을 보지 않는 것.
내 발이 싫어지고 내 손톱과
내 머리카락 그리고 내 그림자가 싫을 때가 있다.
내가 사람이라는 게 도무지 싫을 때가 있다.
- 파블로 네루다, <산보> 부분
‘이발관 냄새’ 나도 시인처럼 쉰 소리로 흐느껴 울고 싶다. 어릴 적 마을 입구에 있던 허름한 이발소.
거기에서는 늘 사람 냄새가 진하게 풍겨 왔다.
‘내가 사람이라는 게 도무지 싫을 때가 있다.’ 산다는 건, 망가지지 않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다.
나를 긍정하고 세상 사람들을 긍정하기 위한 목숨을 건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