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위대한 유산

by 고석근

부모님의 위대한 유산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그 많은 재산과 명성은 내 앞에 다가온 죽음 앞에 희미해져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 스티브 잡스 Steve Jobs (1955-2011, 애플사의 창업자)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 온다. 아마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것이다. 집에 오니, 아무도 없다.


부엌에 들어가니 허공에 광주리 하나가 매달려 있다. 나는 저 광주리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알았다.


‘개떡’이었다. 입에 침이 고였다. 한참 바라보다 밖으로 나왔다. 마당에서 혼자 놀았다.


고추잠자리도 좇고,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다 다시 부엌에 들어갔다. 군침이 돌았다.


한참 바라보다 밖으로 나왔다.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선명하게 내 머릿속에 흑백사진처럼 박혀있다.


가난, 정말 지긋지긋했다. 옷은 항상 꿰맨 자국이 덕지덕지했고, 소매는 콧물로 번들거리고, 얼굴은 햇볕에 타 까만 아이.


다행히 가정 형편이 좀 좋아져 중학교에 진학하고, 고등학교에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가니 대학 가는 아이들이 나무나 부러웠다.


그때의 절망감, 누가 돈을 빌려 주어 나중에 갚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같으면 학자금 대출일 텐데, 그때는 그런 제도가 없었다.


자취방에 돌아오면 얼굴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억지로 웃어보면 얼굴 표정이 일그러졌다.


미래가 없는 소년. 독일의 소설가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며 내가 수레바퀴에 깔려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뒤 행운이 겹쳐 대학에 가고 안정된 직업의 교사가 되고 난 후, 나는 중년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오직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는데, 문득 길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대학원에 진학해 철학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도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다.


나는 그때 유명인들의 대중강의를 많이 들으러 다녔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까 내 안에서 꿈이 피어난 것이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문학을 공부하며 나는 내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토록 싫었던 가난한 시절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가난했기 때문에 항상 내 안으로 움츠려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면의 나를 만나는 게 익숙해진 것 같다.

내가 만일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항상 밖을 내다보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내 안의 ‘꿈꾸는 나’가 제대로 자라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노년기로 들어가며, 나는 ‘부모님의 위대한 유산’을 느낀다. 나의 부모님이 부자가 아니어서 너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고통스럽게 살아오지 않았다면, 내 안의 꿈꾸는 아이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시대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는 병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그 많은 재산과 명성은 내 앞에 다가온 죽음 앞에 희미해져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인간에게 죽음은 너무나 커다란 사건이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그때 삶 전체가 평가될 것이다. 스티브 잡스 같은 이 시대의 영웅도 한탄하는 게 죽음이다.


아마 내가 잘 사는 집에 태어났다면, 남들이 좋다고 하는 직업을 갖고 살다가 지금쯤 은퇴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이 시대 최고의 업적을 이루고도 지나온 삶을 회한으로 바라보는데, 평범한 직업인으로 살았을 나는 어떻겠는가?


나는 지나온 수십 년을 돈키호테처럼 꿈꾸며 살았다. 세상에 내놓을 만한 업적은 없지만, 나는 깊은 삶의 맛은 조금 본 것 같다.


인간 정신의 정수가 담긴 고전을 읽으면 이해가 된다. 그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은 내가 힘겹게 살아왔기에 얻게 되었을 것이다.



골목에서 골목으로

거기 조그만 주막집.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

저녁 어스름은 가난한 시인의 보람인 것을......

흐리멍텅한 눈에 이 세상은 다만

순하디순하게 마련인가,

몽롱하다는 것은 장엄하다.


- 천상병, <주막에서> 부분



나도 나이 들어가며 시인처럼 저녁 어스름에 조그만 주막집을 찾고 싶다.


‘흐리멍텅한 눈에 이 세상은 다만/순하디순하게 마련인가,/몽롱하다는 것은 장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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