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한바탕 꿈이다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허구 덕분에 우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 유발 하라리 Yuval Harari (1976- ,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약 7만 년 전 인간에게 ‘인지혁명’이 일어났다고 한다. 사피엔스(생각하는 동물)에게 ‘생각의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인지혁명이란 사피엔스가 보여주었던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이다. 그들은 ‘허구’를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말한다. “허구 덕분에 우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오늘 아침 6시쯤에 잠을 갰다. 희끄무레한 허공을 보며 생각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아, 화요일이구나!’ ‘화요일에는 저녁 6시에 ㅂ 생협에서 강의가 있지.’ 나는 오늘 하루 일정을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이 정말 화요일인가? 아니다. ‘오늘’에 어떤 이름을 붙여도 오늘을 표현할 수가 없다.
우리가 오늘을 화요일로 하자고 해서 오늘은 화요일이 된 것이다. 허구다. 이 허구 덕분에 오늘은 화요일이 되고 우리는 오늘도 무사히 살아갈 수가 있다.
이 허구의 능력 덕분에 우리는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며 살아갈 수기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흡사 ‘아이들 소꿉놀이’ 같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엄마, 아빠’하고 이름을 붙이고, ‘모래알로 떡 해놓고 조약돌로 소반지어’ 재미있게 논다.
다른 동물들은 이렇게 놀지 못한다. 허구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계속 놀다(살다) 보면 이게 진짜 같아진다는 것이다.
한 여승이 스승에게 “여자도 부차가 될 수 있지요?”하고 물었다고 한다. 스승은 단호하게 대답했단다. “여자는 부처가 될 수 없다.”
여승은 강하게 반발했다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여자도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스승님은 왜 그렇게 말씀하세요?”
스승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고 한다. “그대가 여자인가?” “헉!” 그녀는 그 순간,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그렇다. 남자, 여자... 이런 것들은 다 이름에 불과하다. 허구다! 자신을 남자, 여자라고 생각하는 한 그(녀)는 부처가 될 수 없다.
부처는 모든 것에서 해방된 사람인데, ‘허구의 감옥’에 갇혀 있으니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나’라는 존재는 그냥 나다. 어떤 이름으로도 나를 표현할 수가 없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편의상 서로 이름을 붙이며 살아가는 것이다.
인생이 고(苦)인 것은, 우리가 허구의 감옥에 갇혀 살아가기 때문이다. 나라는 건. 그냥 이름에 불과한데, 우리는 나라는 존재가 실체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나라는 존재가 늙어 가는 것도 고통이고, 병이 드는 것도 고통이고, 죽게 되는 것도 고통이고... 삶 전체가 고통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나다. 생각을 끊고 무심히 존재하는 이 나가 바로 진짜 나다.’
나라는 존재가 어떤 이름으로 살아가는 모든 것들은 다 아이들 소꿉놀이 같은 것이다!
이 소꿉놀이의 재미를 잃어버리게 되면, 우리는 고뇌한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러다 회의주의자가 되고, 허무주의자가 된다. 우울증에 걸리고 삶은 시들시들 시들어간다.
7월 31일이 가고 다음날인
7월 32일이 왔다
7월 32일이 와서는 가지 않고
족두리꽃이 피고
그 다음날인 33일이 오고
와서는 가지 않고
두릅나무에 꽃이 피고
- 오규원, <물물과 나> 부분
7월 31일이 갔다. 허구다. 그럼 오늘 7월 32일은? 헉! 그런 날이 있어? 그 순간, 우리는 ‘진짜 오늘’을 만난다.
생생한 오늘. 살아 있는 실재의 날.
저 나무와 풀들, 새들과 벌레들... 온 생명체들이 누리는 약동하는 오늘을.
시인은 우리를 꿈에서 깨워 ‘물물과 나’로 만나는 기적이 일어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