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은 영혼의 눈이다

by 고석근

상상력은 영혼의 눈이다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이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단다.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Antoine de Saint-Exupéry (1900-1944, 프랑스의 소설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내 그림은 모자를 그린 것이 아니다.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 뱀을 그린 것이다. 내가 그 보아의 속을 그려 보이자, 어른들은 그제야 이해를 했다. 어른들은 항상 설명을 필요로 한다.’


여섯 살 아이가 그린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 뱀’이 왜 어른들의 눈에는 모자로 보일까?


인간의 마음의 구조를 알아보자. 인도의 요가에서는 인간의 마음의 층위를 다섯 개로 나눈다.


첫 번째는 음식층이다. 이 층은 음식으로 만들어진 육체다. 우리는 죽으면 다시 음식으로 돌아간다.


두 번째는 호흡층이다. 호흡은 음식을 산화시켜 생명으로 바꾼다.


세 번째는 마음층이다. 이것은 몸에 대한 의식이며, ‘나’라는 의식, 자아(自我, ego)다.


네 번째는 지혜층이다. 이것은 만물제동(萬物齊同)의 마음이다. 만물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모든 구별하는 마음, 분별심(分別心)이 사라지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희열층이다. 나를 넘어서 하나의 파동이 된다. 관음보살의 천년의 미소다.


이 마음층들의 가장 깊은 곳에 영혼, 자기(自己, self)가 있다.


어린 아이의 마음은 이 다섯 층의 마음을 쉽게 넘나든다. 어떨 땐 잔혹하게 다른 생명을 마구 죽이기도 하지만, 어떨 땐 가장 성스러운 행동을 쉽게 한다.


어른의 마음은 강한 자아에 고착되어 있다. 자아는 항상 자신과 남을 구분하고, 음식층인 육체의 고통과 쾌락에 연연하며 살아간다.


이분법에 갇혀 있는 자아는 보이는 것에만 집착한다. 자신의 육체적 욕망에 연연하다보니, 소유욕이 갈수록 커지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가 전부인 줄 아는 어른은 불행하다. 자신이 가진 것에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게 된다.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 생지옥이 된다.


우리의 마음이 이 자아를 넘어서 지혜층, 희열층으로 들어가게 되면, 모든 사람들, 모든 생명체들이 하나가 된다. 서로의 마음과 몸을 나누며 살아가는 사랑 가득한 낙원이 된다.


현대철학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니체는 최고의 인간을 ‘아이’라고 말한다. 아이는 지난 시간을 쉽게 망각한다.

아무리 즐거웠던 시간도, 아무리 고통스러웠던 시간도 그를 붙잡을 수 없다. 그는 항상 처음으로 이 세상에 왔다.


세상이 마냥 신기할 뿐이다. 이 아이의 마음을 고이 간직한 어른이라면, 이 세상은 그에게 놀이터가 될 것이다.


이렇게 살다간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인류의 모델이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성현들, 위인들, 영웅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눈부신 현대문명은 인간의 끝없는 지적 욕구가 만들어냈다. 그 결과 인간의 마음은 너무나 가난해졌다.


지혜층, 희열층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어른들은 권태를 견디지 못해 자극적인 쾌락을 찾아 나선다.


언젠가 ‘한국은 즐거운 지옥이고, 유럽의 선진국들은 심심한 천국’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는 우리의 밤 문화, 그 안에는 깊은 절망이 있다. 우리의 마음이 더 깊어져야 우리는 절망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풀꽃·1> 부분



풀꽃을 처음 볼 때는, 마음층으로 보게 된다. 나와 전혀 관계없이 벌판에 서 있는 풀꽃이 보인다.


나는 저 꽃을 꺾을 수도 있고, 그냥 지나쳐 갈 수도 있다.


그러다 오래 바라보게 되면, 풀꽃이 서서히 달라지게 된다. 풀꽃과 나의 경계가 차츰 희미하게 된다.


풀꽃과 나는 하나의 파동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함께 춤을 추게 된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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