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친구
중국 명대의 사상가 이탁오는 말했다. “스승이면서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다. 친구이면서 배울 게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어떻게 이 둘이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에게서 ‘스승과 친구의 기술’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제자들이여 나는 홀로 가련다! 너희도 각각 홀로 길을 떠나라! 영원히 제자로만 머문다면 그것은 스승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제자가 할 일은 스승에게서 다 배운 후 하산하는 것이다. 스승을 떠나 자신만의 세계를 열어가야 스승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각자 하나의 세계가 되면, 서로 가르치고 배울만한 게 있다. 하지만, 자신의 세계를 갖기 전에는 스승에게 깍듯이 배워야 할 것이다.
나는 오래 전, ㅎ 문학 수련회를 갔다가 새벽에 수련장을 탈주한 적이 있다. 강사가 내게 시를 보는 눈이 없다고 말한 것에 삐져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뒤 치열하게 시 공부를 했다. 그리고는 알았다. “역시 나는 시를 보는 눈이 없었구나!”
그 강사가 나무나 고맙다. 그가 시의 햇병아리인 나를 배려한다고 무조건 친절하게만 대했다면 지금도 나는 시에 대해 문외한일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스승과 제자는 가르치고 배움에 있어 엄격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탁오의 말이 오해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스승은 제자에게 무조건 친절해야 한다'는 잘못된 문화가 있는 것 같다.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칭찬만 받고 자라는 아이는 자신에 대해 허황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무조건 친절한 스승은 제자에게서 자신을 성찰할 소중한 기회를 빼앗아 버리게 된다.
친구가 길에서 나를 부르며
말의 고삐를 늦출 때
못다 간 언덕을 둘러보며
그 자리에 선 채로
'웬일인가' 하고 소리쳐 묻지는 않는다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있으니까
- 로버트 프로스트, <이야기를 나눌 시간> 부분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 누가 나를 부른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 즉각 일을 멈출 수 있으면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친구는 언제라도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는 사이일 것이다.
그들은 서로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