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얼굴
그저께 ㅇ 환경 단체에서 강의를 했다. 뒤풀이 자리에서 실무자가 말했다. “선생님 강의가 너무 진지할 때가 있어요.”
나는 그의 생각을 안다. 나도 모르게 딱딱하게 굳어지는 강의, 나의 오랜 업보(業報)다.
오래 전에 공부 모임 회원이었던 한 동화 작가가 술자리에서 내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생님은 두 얼굴의 표정이 있어요. 하나는 ‘데드 마스크(death mask)’예요. 그런데 웃으실 때는 천진한 아이 얼굴이 돼요.”
그렇다. 평소에는 나도 모르게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된다. 그러다 즐거운 일이 있거나 술을 마시면 나의 얼굴은 갑자기 아이 얼굴이 된다.
어머니께서는 내게 자주 말씀하셨다. “어릴 적에는 참 똑똑했지. 두어 살 많은 아이들과 놀았어.”
그러다 나이가 들어가며 나는 말이 없는 아이가 되어갔다. 읍내 초등학교에 들어가며 기가 죽게 된 것이다.
천진한 아이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 아래로 깊이깊이 숨어 버렸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는 가끔 내게 “초랭이 같은 놈!”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초랭이는 별신굿에서 양반을 모시는 하인으로 등장한다. 촐싹거리는 행동이 그의 특징이다.
촐싹거리는 아이, 나는 흥을 타고 난 것 같다. 지금도 술을 마시면, 그 흥이 북받쳐 올라올 때가 있다.
나는 흥에 겨워 농담을 하고 장난을 친다. 청소년기에는 이 흥이 다른 아이들을 성가시게 한 것 같다.
얌전하던 아이가 느닷없이 장난을 치니 그들은 당황한 것 같다. 그 후 나의 흥은 점점 내 마음 속 깊이 잠겨들었다.
나는 사람은 너무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주눅이 들어 잘할 수 있는 언행도 잘하지 못하게 된다.
오늘 아침 강의실에 들어가는데, 누가 “선생님!”하고 불렀다. 돌아보니 함께 술잔을 기울였던 분들이다.
나도 모르게 장난기가 발동했다. 60대 남자들의 말장난, 다들 아이들처럼 싱그럽다.
나는 나의 본래 얼굴로 살아가고 싶다. 어릴 적 가난이 할퀴고 간 얼굴 표정은 싫다.
고슴도치같이 머리카락 하늘로 치솟은 아이
뻐드렁 이빨, 그래서 더욱 천진하게만 보이는 아이.
점심시간이면 아이는 늘 혼자가 된다.
혼자 먹는 도시락,
내가 살짝 도둑질하듯 그의 도시락 속을 들여다 볼 때면
그는 씩- 웃는다
- 이영춘, <슬픈 도시락> 부분
이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천진한 얼굴을 간직할 수 있을까?
혼자 먹는 도시락,
아이들은 나의 도시락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혼자 고개 숙이고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