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두 갈래 길
최근에 ㅂ 초등학교에 갔다.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이름으로 저녁에 학부모님,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하며 나는 깜짝 놀랐다. 학부모님들이 상당한 인문학적인 소양을 지니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는 중에 나의 말을 다 기록하시는 교장 선생님의 해맑은 얼굴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자녀 교육에 대한 얘기도 자연스레 나왔다. “우리 아이들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는 장 자크 루소의 교육 철학에 입각해서 아이를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루소는 아이를 자연스럽게 기르라고 했다.
그래야 아이가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는 삶의 주인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많은 학부모님들이 이런 교육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다.
“그렇게 교육시키면 우리 아이들이 이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나요?” ‘이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는가?’ 이것이 이 시대 교육의 화두다.
지금 이 시대 교육법의 주류는 부자연스럽게 아이를 기르는 것이다.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아이를 거기에 맞춰 훈련시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고액영어학원에 보내고 그 후에는 외고, 특목고, ‘스카이’를 나와 전문직 혹은 고액 연봉자로 살아가는 것이 생의 목표가 되어 있다.
문제는 ‘이렇게 살아가면 행복할까?’이다. 나는 단연코 ‘행복하기 힘들다’고 말해주었다.
우리의 교육은 지식위주의 교육이다. 아무리 좋은 학교에서 인문학을 배워도 시험 중심의 지식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지식을 가득 채우게 되면, 상상력, 미적 감수성이 퇴화한다.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깊은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희열이 있어야 한다.
지식만 가득채운 마음속에서는 희열이 올라오지 않는다. 자연스레 밖에서 주어지는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
쾌락은 반드시 불쾌를 동반하게 된다. 그래서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은 점점 더 큰 쾌락을 추구하게 되고, 마음은 점점 공허하게 된다.
아이를 자연스레 기르게 되면, 자신의 잠재력을 다 꽃 피우게 된다. 자연스레 세속적인 가치들도 따라오게 된다.
인생 전체로 보면, 자연스럽게 자란 아이가 부자연스럽게 자란 아이보다 훨씬 잘살게 된다.
초등학교 학부모님들 앞에는 두 갈래 길이 놓여 있다. 어느 길을 갈 것인가? 많은 학부모님들이 두 갈래 길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것 같다.
길러지는 것은 신비하지 않아요.
소나 돼지나 염소나 닭
모두 시시해요.
그러나, 다람쥐는
볼수록 신기해요.
- 임길택, <나 혼자 자라겠어요> 부분
길러지는 아이는 신비로움을 잃어버린다.
이 신비로움을 잃으면 인간은 진정한 행복을 모르게 된다. 쾌락이 행복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깊은 우울과 권태를 견딜 수 없어 점점 더 자극적인 쾌락에 몸을 맡기게 되고 마음과 몸이 피폐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