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데우스
인류는 지금까지 이룩한 성취를 딛고 더 과감한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전례 없는 수준의 번영, 건강, 평화를 얻은 인류의 다음 목표는, 과거의 기록과 현재의 가치들을 고려할 때, 불멸, 행복, 신성이 될 것이 다. (...) 짐승 수준의 생존투쟁에서 인류를 건져 올린 다음 할 일은 인류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고,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바꾸는 것이다.
- 유발 하라리,『호모 데우스』에서
수만 년 동안의 원시시대에는 삼라만상이 다 신(神)이었다. 인간도 당연히 신이었다.
지금도 가끔 ‘내 안에 깃든 성스러운 신성이 당신 안에 깃든 성스러운 신성께 경배합니다’라는 뜻의 인도식 인사 “나마스테”하고 인사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 후 문명화되면서 신은 인간과 다른 어떤 천상의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근대산업사회가 도래하면서 신은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과학의 눈으로 보면, 이 세상에 신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 신의 죽음 이후 신은 영원한 잠 속으로 들어가게 될까?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찬란한 현대 문명은 ‘호모 데우스(신이 된 인간)’을 탄생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분명히 그렇게 될 것 같다. 인간이 태초에 신을 상상했을 때, 신에게는 인간의 모든 소망이 담겨 있지 않았을까?
현대문명이 가져온 눈부신 과학의 발전은 인간에게 자연스레 자신이 신이 될 수 있다는 상상을 하게 할 것이다.
이제 곧 노화의 비밀도 밝혀진다고 한다. 그러면 영생 불사의 인간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과 신의 결정적 차이는 죽음이다. 죽지 않는 인간, 당연히 신이다. 이미 인류는 ‘멋진 신세계’로 진입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인류는 이미 오랫동안 신을 꿈꾸었다. 모든 종교의 목표는 ‘신이 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죽음일 것이다. 죽음의 문제만 해결되고 나면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럼 인간에게 죽음은 무엇일까? 인간의 육체는 분명히 시간이 지나면서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인간의 몸을 현대양자물리학의 눈으로 보면, 에너지장이다. 에너지장이 몸으로 드러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몸은 에너지장이기에 죽지 않는다. 에너지는 영원한 파동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이 육체이면서 에너지임을 깨달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럼 과학의 힘으로 신이 되는 사람들과 인간의 실체를 깨달아 신이 된 사람들, 어떤 사람들이 진정한 신이 된 걸까?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야만인 존은 말한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야만인 존은 어렴풋이 알았던 게 아닐까? 과학의 힘으로 신이 되는 것은 야만인(이 세상의 보통의 인간)보다 못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는 것을.
즐기어 혼자 봄 술을 마시며
정원의 나물 뜯어 안주를 한다
가는 비는 동쪽에서 나리어 오고
비와 함께 불어오는 바람도 좋다
찬찬히 주왕전을 꺼내어 읽고
두루 산해도를 읽어도 본다
고개 끄덕이는 동안 우주를 다 보니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어디 있으랴
- 도연명, <산해경을 읽으며> 부분
시인은 혼술을 하며 우주를 다 본다.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어디 있으랴’
깨달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찰나가 영원이다.”
과학의 힘으로 영생불사가 된 사람들, 과연 행복할까? 시인 같은 높은 정신력을 갖지 않고도, 인간이 더없이 즐거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