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내 일생에서 일을 한 날은 하루도 없었다. 모두가 나에겐 재미있는 놀이였기에. -토머스 에디슨
지난주부터 중고등학생 대상의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성인 대상의 강의는 자신이 있는데 그들은 자신이 없었다. 그들이 싫어(?) 교사직을 그만둔 내가 아닌가? 나는 수업 시간에 마구 날뛰는(?) 그들이 버거웠다. 매시간 마다 소리 지르고 화를 내는 게 견딜 수 없었다. 교직을 그만둔 후 성인 대상의 강의를 하면서는 소리 지르고 화낼 일이 없었다. 그들은 알아서 경청했다. 강의하고 나면 내가 업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10여년이 흐른 후 다시 그들 앞에 서게 된 것이다. 강의 요청이 왔을 때, 거부할까 싶었다. 하지만 해보고 싶었다. 나이 들어서 인가? 아이들이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첫날 강의실에 들어섰을 때, 나는 조용히 정좌해 있는 그들이 두려웠다. 한 아이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 다들 말없이 앉아있었다. ‘이 녀석들에게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강의 주제는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자’는 것인데. 나는 커다란 벽 앞에 선 느낌이었다.
인사말을 하고, 각자 소개를 시키고, 강의를 하는데, 나와 아이들이 겉돌았다. 내 말만 강의실 안을 웅웅거리며 흘러 다녔다. 아이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그들을 보며 나는 아이들에게 사과하고 강의실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항상 명강의(?)를 한 내가 아닌가? 이게 뭐야?’ 온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갔다.
한 시간이 지나 쉬는 시간이 되었다. 강의 진행자가 간식을 들고 들어왔다. 강의 진행자는 간디 학교 출신의 청년이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노래 운동을 하겠다는 특이한 젊은이였다. 부모님은 충분히 재력이 있는데, 자녀 뜻대로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보면 그의 뜻대로 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수강생 중에도 3명이 대안학교 학생이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강의가 시작되었다. 나는 강의 진행자를 소개하고 대안 학교에 대해 얘기를 하며 강의를 끌어갔다. 강의 분위기가 조금 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여전히 한겨울의 얼음 같았다. 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혼자 큰소리로 열강(?)을 했다. 학생들이 듣거나 말거나 내 할 말만 마구 지껄였다. 아마 강의 전에 마신 막걸리 기운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건강이 안 좋아 강의 전에 자주 막걸리를 마시고 강의를 한다. 그러면 피곤한 줄도 모르고 열강을 하게 된다.
두 시간의 강의가 끝났다. 나는 ‘휴-’ 한숨을 내쉬며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은 여전히 목석처럼 앉아있었다. ‘강의 실패야. 이런 걸 강의라고 할 수가 있나?’ 나는 의례적으로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오늘 공부하느라 수고 많았어요. 강의에 대한 느낌을 말해 보세요.” 그러자 초등학교 6학년이라고 소개한 남자 아이가 “재미있었어요.”하는 게 아닌가?
중고등학생 대상의 강의인데, 어머니가 성숙한 아이라며 보냈다고 한 아이였다. ‘헉!’ 나는 그의 말에 놀라 “정말? 그럴 리가 있나? 내가 생각해도 정말 재미없는 강의인데.” 나는 웃음기 어린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가 진지하게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세상에, 이런 일이?’ 나는 강의 진행자와 눈빛을 나누며 웃었다.
다음 강의에 갔더니 주최 측 분들이 아이들이 강의가 재미있었다고 하더란다. 나는 놀라면서도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아, 어쩌면 아이들은 인문학에 목말라 있었던 게 아닐까? 재미없는 강의지만 강의 내용이 그들의 타는 목마름을 씻어주었던 게 아닐까?’ 나는 강의실에 들어서며 자신감을 가졌다. ‘그래, 내 생각을 마음껏 얘기해 보자!’
나는 여유 있게 웃으며 ‘사람은 노는 존재’라는 주제의 강의를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에겐 ‘천재 아이’하며 농담도 했다. “놀아야 해요! 사람은 일하는 존재가 아니야!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야! 여러분은 평생 놀아야 해요!” 나는 열변을 토하다가 질문을 했다. “여러분은 내가 지금 일하는 것 같이 보여요?” 아이들은 희죽 희죽 웃기만 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는 지금 놀고 있어요. 그런데 신나게 놀고 나면 돈도 주네요!”
나는 인간은 원시인 때부터 신나게 노는 게 일상적 삶이었다는 얘기를 했다. “인류 역사에서 18세기까지는 인간은 거의 놀며 살았어요. 일상이 축제였죠. 그런데 산업사회, 자본주의가 되면서 인간은 일하는 존재가 되었어요. 기계처럼 장시간 일하게 되었죠. 우리는 인간은 일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먼저 알아야 해요.” 아이들은 심각하게 듣고 있었다.
나는 신나게 놀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 내가 우리 아이들 양육한 경험도 얘기해줬다. 무작정 시골에 가서 아이들을 마음껏 놀게 하고, 7년을 그렇게 보낸 후 다시 도시에 와서 살았지만 아이들에게 한 번도 공부를 강요한 적이 없었다고 말해 주었다. 10대에 놀 수 있는 힘을 갖지 못하면 평생을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했다.
“저도 사람은 꾸역꾸역 일하며 살다 ‘사는 게 뜬구름 같네.’하며 죽어가는 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인문학을 공부해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삶은 매순간 피어나는 꽃이었어요. 나는 이 세상에 속아 살아 왔던 거예요. 그게 진짜 삶이에요. 여러분은 평생 그렇게 살 수 있어요.” 나는 훨씬 부드러워진 강의실 분위기를 느끼며 열강을 했다.
강의는 다음 주에 한번 남았다. 그때는 ‘어떻게 한 세상을 놀면서 즐겁게 살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강의를 하려고 한다. 만일 내가 지금의 생각을 중학교 때 했더라면 나는 농고를 갔을 것이다. 자연 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며 춤과 글을 깊이 공부했을 것이다. 그렇게 했다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깊은 삶의 비의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30대 후반에 직장을 그만두고 ‘놀이’를 택한 나의 삶, 천만 다행이다. 일하는 존재로 살았다면 어떡할 뻔 했나? 지금쯤 로봇처럼 직장에 다니거나 명퇴 당해 집에서 ‘옛날에 옛날에...... .’를 중얼거리며 살아가고 있겠지. 나는 삶은 질이지 결코 양이 아니라는 걸 안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지 않았던가?
삶은 눈부시게 빛나는 꽃이라는 걸 나는 안다. 아직 내 혼은 시들어 있지만 물과 거름을 꾸준히 주면 빛과 향을 가득 내뿜는 꽃으로 피어난다는 걸 나는 안다. 어느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그 빛과 향을 느낄 때가 있다.
4층에서 1층까지
계단은 심심하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이 버린 껌종이와 부서진
장난감이 계단 위에서 나뒹군다
- 윤희상,《계단이 더러워진 진짜 이유》
우리는 계단이 더러워진 이유를 안다. ‘아이들이 버린 껌종이와 부서진/ 장난감’ 하지만 진짜 더러워진 이유는 시인만이 안다.
시인의 감성이 시인에게만 있을까? 우리가 늘 허무감을 느끼는 건, 우리가 시인이 못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