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

by 고석근

충동


어느 날 내 삶이 멈추겠지만, 내 죽음이 내 삶을 규정하지 않고, 내가 늘 생의 충동이기를 바란다. - 장 폴 사르트르



오늘 강의 시간에 한 수강생에게서 감동적인 얘기를 들었다.


“이웃집 아이가 저희 집에 놀러와 저희 아이랑 재미있게 놀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아이가 갑자기 ‘충동적으로’ 비행기하고 로봇 장난감을 혼자서 갖고 놀겠다고 떼를 쓰는 거예요. 저번 시간에 공부한 게 생각났어요. 그래서 그 아이에게 좋아하는 장난감을 다 주었어요. 그랬더니 그 아이가 장난감을 혼자 다 갖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저희 아이하고 잘 놀더라구요.”


이웃집 아이에게 “친구랑 친하게 지내야지 그러면 못 써.”하고 설득하려 했다면 오히려 역작용이 일어났을 것이다. 저번 강의 시간에 공부한 게 ‘인간은 충동적 존재’라는 거였는데, 그 수강생은 그 ‘충동’을 잘 승화시켜 준 것이다.


우리는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고 배워왔다. 그래서 우리는 충동을 억제하며 이성적으로 살려고 노력해 왔다.

그런데 왜 세상엔 충동적인 인간들이 벌이는 엽기적인 사건들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걸까? 아직 ‘이성적 인간’이 덜 되어서 그런가? 그렇다면 이성적 인간이 된 경우는 얼마나 되는가? 평범하게 사는 우리는 과연 얼마나 이성적인가?


인간은 동물에서 진화해왔기에 충동이 강하게 남아 있다. 충동에 따라 살던 인간이 이성을 획득하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에겐 이성은 아주 미약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 미약한 이성으로 인간을 규정하려 한다. 그러다보니 충동은 무의식 속으로 숨어버린다. 심층심리학자 융이 말하는 ‘그림자’가 형성된다. 이 그림자는 항상 우리를 따라다닌다.


그 그림자를 빛 속에 내 놓으면 서서히 사라지고 마는데, 우리는 이 그림자가 두려워 없는 척 한다. 그러다보니 그림자는 언제 어디서 출몰할지 모르는 괴물로 우리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나도 내 안의 검은 그림자 때문에 너무나 힘겹게 살아왔다. 내 안에서 뭔가 꿈틀거리는데 그 정체를 몰랐다. 늘 힘들고 불안했다. ‘에고 사는 게 다 그렇지 뭐’하고 바쁜 생활에 나를 맡겼다.


삶은 뜬 구름처럼 지나갔다. ‘이게 사는 게 아닐 거야’ 직장을 그만두고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했다.


문학 공부할 때가 가장 편안했다. 함께 공부하는 벗들과 밤 새워 술을 마셨다. 갑자기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혼자서 통곡했다. 한강 고수부지에서 듣는 강물소리가 너무나 좋았다.


언젠가는 패싸움도 했다. 학창 시절에 싸움 한 번 제대로 못 해 본 내가 30대 후반에 패싸움이라니! 경찰서에 끌려가는데 그렇게 마음이 편안했다. 훈방 조치되어 온몸에 피를 묻힌 채 새벽 전철을 타고 집에 왔다. 흘긋흘긋 보는 사람들 시선이 너무나 좋았다.


‘나도 인간이란 말이야!’ 그렇게 ‘충동적으로’ 몇 년을 보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 안의 충동이 고분고분해지고 있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심우도(尋牛圖)로 설명한다. 내 안의 소와 하나가 되는 것! 나는 소를 타고 너무나 자유롭게 길을 간다.


애들은 싸우면서 커야 하는데 나는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다 커서 그 때 못한 것을 하고서야 어른이 될 수 있었다. 항상 불만 가득한 눈으로 누구 싸울 사람 없나 하는 표정의 어른들을 많이 본다. 싸우면서 크지 않아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다.


우리 안의 충동은 잘 가꾸면 우리를 아름다운 인간이 되게 한다. 하지만 가꾸지 못하고 억제만 하면 그것은 짓눌린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려고만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마구 날뛰게 한다.



시간이 나면

아프겠지 남겨둔 안식처럼

상처가 쑤시겠지 통증이 한 번

크게 파도칠 때까지 기다리면

손목을 긋는 충동이 달려와 주겠지

시간이 나면 거지같은 슬픔들이 우우

몰려오겠지 더럽게 추근대며


- 이상희,《시간이 나면》부분



우리는 ‘시간이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안다. 두렵다. 그래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간다.


우리의 마음이 마구 파도치게 놔두어야 한다. 차츰 파도를 타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파도를 타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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