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제를 위하여
앞으로 인류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육체노동을 대신해 주는 사회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 시대에는 기계가 인간 노동의 99%,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노동 99% 이상을 대체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인간은 오직 즐거움을 위해 근력을 사용하고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이야기를 만드는 데 뇌를 사용할 것입니다. 이미 이런 흐름은 문화산업에서 진행 중입니다. CF,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1인 콘텐츠 등 스토리가 담긴 문화산업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 한지우, 『AI는 인문학을 먹고 산다』에서
그저께 공부모임에서 한 회원이 말했다. “저희 큰 아이가 독립영화를 만든데요... 청년들에게 기본소득제를 실시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녀를 대안학교에 보낸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들의 범상치 않은 삶에 많은 걱정을 한다.
나는 그런 아이들 얘기를 들으면 가슴이 뛴다. 도전하는 젊음! 얼마나 신명나는 일인가!
나는 항상 먹고 사는 문제에만 목을 매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 젊은 시절을 그렇게 시들시들하게 보냈다.
다들 말한다.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 어떻게? 기본적인 소득이 없이 그게 가능한가?
물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면 된다! 가슴이 뛰는 삶 외에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앞만 보며 가면 된다.
하지만 그런 비범한 아이가 몇 명이나 될까? 대다수는 먹고 사는 평범한 삶을 선택하게 된다.
미래에는 뛰어난 천재가 수십 만 명을 먹여 살리게 된다는 말을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청소년들에게 도전하는 삶을 살게 해야 한다. 수십 만 명이 도전하는 일에서 한 두면의 천재가 나올 것이다.
천재 혼자 그 일을 하지는 못한다. 마라톤 선수가 혼자 뛴다면? 완주하는 것도 힘들 것이다.
어릴 적 시간만 나면 축구를 했다. 짚을 뭉쳐 공을 만들어 들판에서 축구 경기를 했다.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은 TV가 있는 집에 모여 들었다. 우리의 영웅은 차범근이었다.
그의 현란한 몸놀림을 보며 우리는 찬탄을 했다. 수많은 팬들의 열기로 그는 축구 영웅이 되었을 것이다.
기본소득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놀고먹는 청소년들을 걱정한다. 하지만 그런 청소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청소년들은 무언가에 도전할 것이다. 인간은 ‘상상력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요즘 먹고 사는 문제에만 몰두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안쓰럽다. 누가 저 푸른 젊음을 저렇게 만들었는가?
우리 어른들은 처절하게 반성해야 한다. 인공지능시대에 맞지 않는 우리의 생각이 연푸른 새싹들을 시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먼 바다로 나가지 않는
먼 바다로 나가지 못하는
먼 바다로 나갈 꿈을 접은
배
이제 꿈을 버린,
천왕봉이나 대청봉에 도전할 꿈을 버린
밥 버는 곳과 밥 먹는 곳만 오락가락하는,
이놈아 넌 누구냐
- 이희중, <닻> 부분
시인은 어느 날 목욕탕에 갔나 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닻을 내린 배’를 본다.
‘밥 버는 곳과 밥 먹는 곳만 오락가락하는,’
‘이놈아 넌 누구냐’
우리는, 우리의 배는 항상 어딘가로 떠나려 한다는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