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부터의 도피
권위주의적 성격은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는 조건들을 좋아하고, 그리고 기꺼이 운명에 복종한다.
- 에리히 프롬,『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안드레아스 프로차스카 감독의 영화 ‘다크 밸리(The Dark Valley)’를 보았다.
알프스 산을 따라 카우보이가 ‘다크 벨리’에 도착한다. 하나의 일가(一家)가 지배하는 ‘검은 골짜기 왕국’.
그 일가는 그 왕국의 처녀가 결혼하면 초야권(신부와 첫날밤을 보냄)을 행사한다. 카우보이도 그렇게 태어났다.
카우보이는 어머니를 대신해 복수를 하러 나타난 것이다. 그의 총알에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압제자들(그의 형제들).
그는 차마 왕(그의 친부)은 죽이지 못한다. 그렇게 피를 먹고 피어난 마을의 자유와 평화.
하지만 마을 주민들 대다수는 자유가 버겁다. 그들은 왕가(王家)의 지배에 익숙해진 것이다.
그들은 ‘자유를 속박하는 조건들을 좋아하고, 그리고 기꺼이 운명에 복종하는 인간’이 된 것이다.
카우보이는 쓸쓸히 떠난다. 그들이 노예가 된 심리적 근원은, 그들이 생(生)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말했다. “죽음의 본능은 성적 본능과 융합하고, 그 융합된 것이 자신을 향하면 피학증으로 나타나고 타인을 향하면 가학증으로 나타난다.”
그는 인간에게는 두 개의 원초적 본능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삶의 본능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의 본능이다.
그 마을 주민들은 사랑을 잃었기에, 삶의 본능을 잃게 되었다. 죽음의 본능이 그들의 영혼을 지배하게 되었다.
죽음의 본능은 성적 본능과 융합하고, 그 에너지가 자신들에게 향해져 피학증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부르는 소리도 없었는데
나는 왜 접근금지인 세상을 꿈꾸었을까.
아무도 가보지 못한 세상
깊은 구멍으로만 존재하는 세상이
왜 내 生을 상기시켰을까.
선데이 서울,
내 生에 총천연색 욕망을 칠해놓고
그것이 어둠임을 가르쳐주었다.
- 황규관, <선데이 서울> 부분
나도 시인처럼 ‘선데이 서울’을 보며 성장했다. 총천연색 욕망을 칠해놓고 접근 금지인 세상.
‘깊은 구멍으로만 존재하는 세상’
그 깊은 어둠 속으로 우리는 깊이깊이 빠져 들어갔다.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