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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하는 삶을 향하여

by 고석근

만족하는 삶을 향하여


언젠가 내가 안락의자에 눕는 날, 그때로 내 인생은 끝장이다! 네가 무슨 수를 쓰든 나를 속여 넘겨 내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는 날, 네가 나를 향락으로 속여 넘기는 날, 그때를 나의 마지막 날로 삼자!


- 요한 볼프강 폰 괴테,『파우스트』에서



인생은 고(苦)라고 한다. ‘인생은 고통’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누구나 쉽게 수긍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고(苦)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불교에서 말하는 ‘고통(dukkha)’이라는 단어의 뉘앙스를 잘 이해해야 한다.


dukkha라고 하는 말은 ‘불만족’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안다. 우리의 욕망은 도무지 만족을 모른다는 것을.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인간이 욕망하는 대상은 언젠가 결핍되었던 것이 그 대상으로 전이되었기에, 인간의 모든 욕망은 아무리 충족해도 만족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는 무수히 겪어 왔다. 우리가 원했던 것들이 이루어지는 순간, 그것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그것들을 진짜 원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것들은 우리가 과거에 이루지 못한 것들이 우리 앞에 그런 모습들로 나타났던 것이다.


우리는 항상 목이 마르다. 그래서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말하는 것이다.


‘내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는 날, 네가 나를 향락으로 속여 넘기는 날, 그때를 나의 마지막 날로 삼자!’


파우스트 박사는 자신이 삶에 만족하게 되면, 악마에게 이끌려 지옥에 가도 좋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그는 ‘인생 불만족’이라는 너무나 커다란 삶의 고통에 신음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는 이 시대의 성공한 인물을 상징할 것이다. 모든 지식을 섭렵하고 만인의 존경을 받는 지식인.


얼마나 멋진 인생일까? 하지만 그는 도무지 만족하지 못하는 삶에 지쳤다. 그는 지옥에 떨어질지라도, 단 한번이라도 만족해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다. 다시 젊어지고 온갖 향락을 누리게 된다.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이니까.


그러다 그의 내면에서 ‘사랑’이 깨어난다. 인간의 욕구는 상승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은 낮은 차원의 욕구가 채워져야 한다. 육체적 향락을 누려봐야 더 높은 정신적 차원의 욕구를 지향하게 된다.


그는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고, 세상을 위해 간척 사업을 하게 된다. 어느 날, 그는 외치게 된다.


“멈추어라, 순간이여! 너는 참으로 아름답구나!”


그에게 악마가 다가온다. 그의 영혼을 지옥으로 데려가려고. 하지만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그를 구원해 준다.


바로 ‘만족하는 삶’이 인간의 구원인 것이다!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육체적 향락을.


우리는 몸을 온전히 사랑해야 한다. 온전한 몸은 바로 영혼 그 자체다. 몸을 떠난 영혼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야 한다. 몸의 소리가 영혼, 신의 소리이니까.



나무여 영혼이여

가벼운 참새같이 나는 잠시 너의

흉하지 않은 가지 위에 피곤한 몸을 앉힌다


- 김수영, <서시> 부분



시인은 진정한 삶을 시작한다.


‘가벼운 참새같이’ 영혼의 나무에 ‘피곤한 몸’을 앉힌다.


온전한 몸, 온전한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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