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을 넘어서
인간은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존재다.
- 윌리엄 번스타인,『군중의 망상』에서
어제 공부 모임에서 한 회원이 질문을 했다.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라고 하는데,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겸손 같은 미덕이 아닌가요?”
겸손, 참 좋은 말이다. 겸손한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지 않은가? 스스로도 겸손할 때 기분이 좋고.
그런데 왜 우리는 겸손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걸까? 지위가 높아지고 돈이 쌓이게 되면 우리의 자아는 팽창하게 된다.
오만한 마음이 생겨나고 자신도 모르게 남을 무시하게 된다. 이 마음을 억누르고 겸손하려해도 잘 되지 않는다.
안에서 권력욕이 솟아올라오기 때문이다. 이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따라서 도덕주의는 위험하다. 언뜻 생각하면 참 좋은 것 같은데, 공리공담이 되고 만다.
‘인간은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 안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
자신의 검은 욕망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더 깊은 마음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거기에는 우리의 영혼이 있다.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영혼의 소리가 크게 들릴 때, 우리는 자신의 검은 욕망을 다스릴 수 있게 된다.
이런 마음의 이치를 모르고 도덕주의를 주장하게 되면, 부도덕한 세상을 탓하게 되고 결국에는 자신도 경멸하게 되어 절망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우리가 도덕을 생각하게 될 때는 그 생각의 뿌리를 찾아보아야 한다. ‘왜 내가 도덕을 부르짖게 되었을까?’
그러면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둑한 곳에 똬리 틀고 있는 검은 욕망을.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강한 자들에 대한 원한들을.
강자들에게 대항하지 못하니까 도덕을 내세우게 되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니체가 말하는 약자들의 정신승리법이다. 우리는 이 거짓 마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영혼을 깨워가야 한다.
영혼이 우리 안에 태양처럼 밝아지면, 당당해진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보이게 된다.
강자들로 보였던 사람들도 허약한 군상들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깊은 내면에는 신성(神性)이 있다.
우리는 자신을 속이지 말고 살아가야 한다. 내면의 영혼을 깨워 강자가 되어야 한다. 노자는 “진정한 강자는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부분
자신이 얼마큼 작은지......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클 수가 있다.
한 알의 씨앗이 되어 쑤욱 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