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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다

by 고석근

나는 나다


우리는 스스로를 발견하기 위해 우리 자신에 대한 선언을 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자유로운 이유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발견하고, 발명하고, 창조할 수 있다.


- 질 들뢰즈 Gilles Deleuze (1925-1995, 프랑스의 철학자)



제니퍼 포스베리의 그림책 ‘내 이름은 이자벨라가 아니야’를 읽는다.


“잘 잤니? 이자벨라. 자, 이제 일어나야지.” 엄마가 크게 부르자, 이자젤라는 이불 속에서 외친다.


“내 이름은 이자벨라가 아니에요!”


이자벨라는 이어서 말했다. “나는, 나는, 누구보다도 용감하고 위대했던 샐리랍니다!”


엄마가 대답했다. “아하, 그렇구나. 샐리, 그럼 우주복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아침 식사를 하자꾸나.”


“안녕, 샐리!” 엄마가 인사를 했다. 그러자 이자벨라가 대답했다. “내 이름은 샐리가 아니에요!”


엄마가 물었다. “그럼 내가 만든 맛있는 아침을 먹는 사람은 누구지?” 이자벨라가 대답했다.


“나는 최고의 명사수, 사격의 여왕 애니라고 하지요!”


엄마가 말했다. “그렇구나, 애니. 잽싸게 말을 타고 달려와 아침을 먹으렴. 여자 카우보이들에게는 굉장히 좋은 음식이란다.”


이자벨라는 계속 변신했다. 이자벨라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저녁이 되고 이자벨라가 잠잘 시간이 되었다. 엄마가 말했다. “자, 엘리자베스. 이제 곧 잠잘 시간이야. 어서 올라가 목욕해야지.”


이자벨라가 대답했다. “내 이름은 엘리자베스가 아니에요.” 엄마가 말했다. “그럼 따뜻하고 향기로운 물이 가득 찬 이 욕조에서 목욕할 숙녀는 누구야?”


“나는, 나는, 세상에서 제일 위대하고 아름다운 ‘엄마’예요!” 이자벨라는 침대로 가서 누웠다.


엄마는 불을 꺼 주며 말했다. “잘 자. 엄마!” 이자벨라가 말했다. “나는 엄마가 아니에요!”


“나예요, 이자벨라.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똑똑하고, 착하고, 상냥하고, 훌륭하고, 빠르고, 마음이 넓은 이자벨라라구요.”


꿈을 꾸는 사람만이 자신이 된다. 영혼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갔다 오면, 자신이 더없이 사랑스러워진다.


‘나는 나’가 된다. 그 무엇으로도 무한 변신할 수 있는 나. 우주를 다 품을 수 있는 나.



한 때 나는 좌판에 던져진 햇살였다가

중국집 처마밑 조농 속의 새였다가

먼 먼 윤회 끝

이제 돌아와

오류동의 동전


- 박용래, <오류동의 동전> 부분



우리는 계속 무언가가 된다.


그런데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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