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광기로 하여금 항상 이성을 감시하도록 하라
인간들은 필연적으로 광적이어서, 미치지 않은 것이 광기의 또 다른 술책에 의해 미친 것으로 비칠 정도이다.
-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 프랑스 철학자)
J.D.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홀든 콜필드는 택시를 타고 가다 택시기사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아저씨, 센트럴파크 남쪽에 있는 연못에 오리 있잖아요. 연못의 물이 얼면 오리들이 어디로 가는지 아시나요?”
그러자 택시기사는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미친 사람을 바라보듯이. 그리고는 말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날 놀리는 건가?”
나는 가끔 홀든 콜필드의 질문 같은 것을 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많다. 특히 술에 취했을 때, 거리를 걸어가면 마주치는 사람들이 다 정겹다.
사람들의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면, 누구나 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 아닌가? 아주 오래 전 어디서 마주쳤던 사람 같은... .
하지만 “안 돼!” 나의 이성은 나의 광기를 철저히 감시한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가면 어떻게 될까?
자꾸만 메말라진다. 이상 시인이 말하는 제웅(짚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이 되어간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 마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무슨 바보 같은 질문도 다 통했던 것 같다.
가정에서는 그렇지 않은가? 아이들이 엉뚱한 질문을 하면 다들 까르르 웃지 않는가?
그런데 왜 한 사회에서는 그렇게 하면 되지 않는가? 고등학교 자퇴생인 홀든 콜필드에게는 겨울의 오리가 궁금하지 않겠는가?
자신이 지금 겨울 오리니까. 만일 택시기사가 한 마을에서 그와 형제처럼 살던 사람이라면 그의 질문에서 그의 다급한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타고나기를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존재’다. 서로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누어야 하는 존재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그저께의 ‘신림동 사건’처럼 ‘묻지마 범행’이 일어나게 된다.
미쳐서 마구 칼을 휘두르게 된다. 망나니의 칼에 20대 청년이 사망하고 3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래서 현대 프랑스철학자 자크 라캉은 말했다. “너의 광기로 하여금 항상 이성을 감시하도록 하라.”
홀든 콜필드의 질문을 막는 사회는 모든 사람을 미치게 한다. 미친 사람들의 귀에는 미치지 않은 모든 목소리들이 다 미친 사람의 목소리로 들리게 된다.
강남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자살을 했다. 미친 학부모들에게 둘러싸여. 그 교사의 목소리는 그들의 귀에 미친 사람의 목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온몸으로 풀씨알을
바람 속에 풀고 있다
눈썹 뽑힌 아픔으로
터럭 빠진 절망으로
하늘과 땅 사이를
미친 듯 가고 있다
- 서정춘, <민들레> 부분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간다.
‘하늘과 땅 사이를/미친 듯 가고 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민들레 홀씨가 되어 서로 인사를 나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