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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타세요

by 고석근

그냥 타세요


생각을 멈추면 인간이 아니게 된다.


-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 미국 정치철학자)



며칠 전에 다음과 같은 인터넷 기사를 보았다.


‘월요일 아침 출근길 교통카드가 인식되지 않아 당황한 승객에게 “그냥 타시라”며 친절을 베푼 버스기사가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게 된 사연이 알려져 화제다.’


그 승객은 이틀 뒤 버스 기사의 회사인 우신운수 측으로 음료수 10박스를 보냈다고 한다.


우신운수는 버스에서 요금을 내지 못한 승객에게는 회사의 계좌번호가 적힌 명함을 제공해 다음에 요금을 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훈훈한 기사다. 이 기사가 일으킨 바람이 공무원 사회를 위시한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관공서를 출입해 본 사람은 한결같이 느낄 것이다. 공무원의 복지부동. 공무원은 상명하복이다. 그들은 매뉴얼대로만 하려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느끼지 않는가? 그럼 차라리 로봇이 더 낫지 않은가? 로봇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매뉴얼대로 임무를 수행할 테니까.


그래서 오랫동안 공직에 몸 담았던 사람들을 보면, 얼굴 표정, 몸짓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과 대화를 해 보면, 목소리도 기계음이다. 도무지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가 없다.


생각 없는 삶, 얼마나 무서운가? 인간과 동물의 결정적 차이는 ‘생각’이다. 인간이 생각하지 않으면 동물로 퇴화한다.


동물로 퇴화한 인간에게 국가의 크고 작은 여러 사무를 맡기면 어떻게 되나? 그들의 결정 하나에 국민들의 생사가 걸려 있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그것이 잘못인지조차 잘 모른다. 그들은 스스로를 모범적인 공무원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이번에 크게 난 물난리, 만일 버스기사가 승객에게 행했던 것처럼, 물난리와 관계된 많은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일을 수행했다면, 이번 같은 큰 수해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수해와 관련된 문제들을 일선 공무원들은 잘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무슨 권한이 있는가?


잘못되면 그들에게 의무만 지워 무거운 책임을 묻지 않는가? 그러니 공무원들은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 된다.


문제를 뻔히 알아도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공무원들. 그들에게 버스기사가 승객에게 할 수 있는 정도의 권한만이라도 주어져야 한다.


‘버스기사와 승객의 훈훈한 기사’가 미담으로만 끝나지 않고, 우리사회가 큰 교훈을 얻는 기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의 자유정신이 널리널리 퍼져가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오랜 악몽에서 깨어났으면 좋겠다.



젊음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다.

그것은 장미빛 뺨도 빨간 입술도 아니며 나긋나긋한

무릎도 아니다.

그것은 의지와 상상력이며 활력이 넘치는 감성이다.

그것은 삶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이다.


- 사무엘 울먼, <젊음> 부분



젊음이야말로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가!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떤가? 초등학생 때부터 애늙은이가 된다.


조로증(早老症)에 걸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어떻게 되나? 죽음의 먹구름이 우리의 머리 위에 드리우게 된다.


우리 사회의 온갖 참혹한 사건사고들은 젊음을 잃어버린 사회의 증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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