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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배처럼

by 고석근

빈 배처럼


한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빈 배가 와서 그의 배에 부딪치면 그가 아무리 성격이 나쁜 자일지라도 그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 세상의 강을 건너가는 그대 자신의 배를 그대가 비울 수 있다면 아무도 그대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대를 해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 장자,『장자』에서



고대의 현자 장자는 우리에게 가르친다. “빈 배처럼 살아가라. 그러면 아무도 그대와 맞서지 않고 해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우리는 버스 안에서 무심코 내 발을 밟은 사람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우리의 배를 비우고 살아야 할까?


인간은 각자 하나의 세계다. 우리의 감각은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우리의 생각(세계관)은 감각이 받아들인 세상을 우리의 생각대로 받아들인다.


돈을 최고의 가치로 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볼 때 ‘돈을 얼마나 가졌는가?’의 눈(세계관)으로 본다.


그런 눈빛 앞에서 우리는 화가 난다. 그의 눈빛에 그의 세계가 꽉 차 있기 때문이다.


이 세계를 비운 눈! 그런 눈으로 우리를 보면 우리는 그의 눈빛 앞에서 화가 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눈빛은 인상파 화가들의 눈빛일 것이다. 그들은 세상을 무심히 보려 한다. 텅 빈 의식으로 삼라만상을 보려한다.


우리의 의식은 오감이 받아들인 것을 종합한다. 그 의식에 영향을 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이 생각만 텅 비우면 우리의 의식은 세상을 보이는 대로 보게 된다. 세상은 그들의 눈빛에서 폭력을 느끼지 않는다.


이 세상은 하나의 에너지장이기에 무심한 의식과 만나면 좋은 파동이 일어난다. 하나의 춤이 된다.


우리가 빈 배처럼 살아가려면, 우리는 인상파 화가 고흐, 모네, 세잔처럼 삼라만상을 무심히 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인상파 이전의 미술은 원근법을 고수했다. 원근법은 보는 자 중심의 시각(세계관)이다.


그들의 눈빛이 우리를 향한다면, 우리는 심한 불쾌감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길을 가다 다른 사람들의 눈빛과 마주치면 황급히 피한다.


우리의 눈빛은 각자의 원근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짐승들 눈빛이 좋다. 그들의 눈빛에는 우주의 파동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나의 눈빛을 피한다. 나의 눈빛은 나의 원근법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손가락들 사이로

내 의식의 층층들 사이로

세계는 빠져나갔다


- 최승자, <빈 배처럼 텅 비어> 부분



시인은 노래한다.


‘빈 배처럼 텅 비어’


그녀는 얼마나 오랫동안 세상을 무심히 보려 노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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