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이야기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 프란츠 카프카,『변신』에서
30대 중반, 내게 ‘중년의 위기’가 왔다. ‘차라리 큰 병에 결려 병원에 입원했으면 좋겠어.’
(지금의 삶보다는) 병실의 환자가 되어서라도 살아남고 싶은 소망, 얼마나 무서운 생각인가!
어느 날 나는 아내와 함께 산사를 찾아갔다. 대웅전에서 아내와 함께 예불을 하고 나왔다.
계단에 아내와 나란히 앉았다. 나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자기야, 나 직장 그만두고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어.”
아내는 조용히 듣고 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 나는 며칠 후 직장에 사표를 냈다.
아들이 둘이나 있는 가장이 자발적인 백수가 되었다. 하늘을 훨훨 날았다. 며칠을 밤을 새워도 피곤하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의 화두였다. 아내가 그 후 무당에게 갔단다. 무당이 말하더란다. “남편은 산에 들어가면 고승이 될 것입니다.”
나는 고독한 수행자는 되지 못할 것이다. 세속이 너무나 궁금해서. 하지만 속세에서만도 살지 못할 것이다.
나의 삶이 나의 수행처였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문학을 공부하고... 나의 길 찾기는 참으로 길었다.
나는 긴 시간동안 나를 진화시켰다. 변신에 성공했다. 어설프지만, ‘작가와 인문학 강사’로.
20세기 최고의 작가로 칭송을 받는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는 너무나 슬픈 변신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아, 그레고르 잠자는 평소에 얼마나 변신하고 싶었을까? 더 나은 자신으로. 하지만 진화할 수 없는 그는 차라리 퇴행하는 변신을 택했다.
인간에서 벌레로 변신하여서라도 살아남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벌레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훤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벌레로의 변신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였다. 이만큼 생명체에게 절박한 문제가 어디 있으랴?
그가 벌레로 변신하지 않았다면, 어느 날 아침 그는 침대 속에서 하나의 흉측한 주검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요즘 괴물로 변신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출몰한다. 아, 괴물이 되어서라도 살아남으려는 사람들!
모든 생명체는 더 나은 모습으로 진화하려 한다. 하지만 그 길이 막히면? 퇴행을 한다. 살아남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파충류로 퇴행했다는 생각이 든다. 파충류는 조금이라도 자신을 건드리면 바로 독을 뿜어낸다.
어제 청년 인문학 강의 시간은 뜨거웠다. 나의 권유로 회사에 다니는 작은 아이도 참여했다.
강의 끝 무렵에 작은 아이가 말했다. “회사의 교육 시간은 30분도 엄청나게 긴데, 두 시간이 훌쩍 갔어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 다들 변신하고 싶구나! 더 나은 자신들로. 눈빛을 반짝이는 젊은 영혼들이여.’
단념하는 살(肉) ---- 이윽고 소멸 ----
무가 시작됐네 ----
관중들처럼 ---- 두 개의 세계는 흩어지고
이윽고 홀로 ---- 영혼만이 남았네 ----
- 에밀리 디킨슨, <심판을 향해 떠나가며> 부분
아, 나도 죽음이 다가왔을 때, 시인처럼 ‘이윽고 홀로 ---- 영혼만이 남았네 ----’라고 노래할 수 있다면.
니체는 ‘죽음은 마지막 도전’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