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은 왕이로소이다
모든 것은 조물주에 의해 선하게 창조됐음에도 인간의 손길만 닿으면 타락하게 된다.
- 장 자크 루소,『에밀』에서
큰 아이가 다섯 살 때였다. 어린이집에 다녀오더니 시무룩하게 고개를 수그리고 마루에 앉아 있었다.
나는 큰 아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그래? 현웅아!” 갑자기 큰 아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나... 왕자님 아니야!”
얘기를 들어보니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노래를 부를 때, 선생님이 한 아이를 지명하면 아이들은 그 아이 이름 뒤에 왕자님, 공주님을 붙여 노래를 부른단다.
장모님이 그 다음 날 어린이 집에 찾아가고, 집에 온 큰 아이는 자신도 왕자님이 되었다며 싱글벙글했다.
언젠가부터 아이들을 왕자님, 공주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멸문을 당할 대역죄였을 것이다.
그 뒤 우리는 시골로 이사를 갔다. 아이들을 시골에서 기르고 싶었다. 아이들이 시골에서 자라며 자연 속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잘 자라기 바랐다.
그 당시만 해도 시골에서는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았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마을에서 마음껏 뛰어 놀았다.
나는 아이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이 ‘사회성’이라고 생각했다.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태도.
그리고 아이들은 어린 시절에 특별대우를 받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릴 적 읍 변두리에 살면서 읍내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때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시골 아이들과 읍내 아이들의 선명한 대비, 나는 까만 시골 아이였다.
그때 깊이 심어진 열등의식은 지금도 내 몸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듯하다. 그 상처를 생각하면 나도 우리 아이들을 왕자님으로 기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어릴 적 상처를 입으며 자란 게, 부모님의 위대한 유산이라는 생각을 한다.
밑바닥에서 자랐기에 인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지금도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시골에서 자라며 자연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배우기를 바랐다.
오늘 아침 인터넷 기사를 읽다가 ‘헉!’ 놀랐다. “내 자식은 왕의 DNA 가졌다…아동학대로 담임 신고한 교육부 공무원”
그는 본인을 소개할 때 이렇게 말했단다. “내가 무려 교육부 5급 사무관씩이나 된다.” “당신 같은 선생님을 가볍게 처리하는 건 나한테 일도 아니다.”
그 후 담임교사는 아동학대로 신고당한 직후 직위해제 됐고 올해 5월 검찰에서 최종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담임교사에게 “‘하지마’ ‘안돼’ ‘그만’ 등 제지하는 말은 하지 마라”, “왕의 DNA를 가진 아이이기 때문에 왕자에게 말하듯이 듣기 좋게 말해 달라”, “또래의 갈등이 생겼을 때 철저히 편 들어 달라” 등 9개 항목의 요구사항이 담긴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나의 깊은 마음 안에도 저런 마음이 있다. 읍내 초등학교에서 희멀건 읍내 아이들과 비교당하며 나의 마음 안에는 짙은 어둠이 쌓여 갔다.
나의 짙은 어둠을 알게 된 건, 교사 시절에 동료 교사들과 함께 만든 공부모임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공부하고 뒤풀이를 하며 나는 나의 어둠에 사로잡히지 않게 되었다.
나도 그 공부 모임이 없었다면, 저 학부모처럼 되었을지도 모른다. 가난한 시골 아이이기 때문에 당한 억울함은 지금도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
공부를 하며 나는 그 독사를 다스려왔다. ‘밖으로 나오면 안 돼!’ ‘조용히 안에서만 머물러야 해!’
나는 그때 동료 교사들과 함께 공부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에 전율했다. 말갛게 다시 태어나는 시간이었다.
드라마를 보면, 소위 상류층에서는 자녀들에게 갑질을 가르친다. “너는 일반인들과 다른 사람이야!”
그 문화가 아래로 내려오고 있다. 다들 상류층 흉내를 내려한다. 문제는 상류층도 아닌 일반인들이 갑질을 하고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현대 교육의 성서 ‘에밀’은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것은 조물주에 의해 선하게 창조됐음에도 인간의 손길만 닿으면 타락하게 된다.’
첫돌 겨우 지난 아들 녀석
지나가는 황소 보고 엄마
흘러가는 도랑물 보고도 엄마, 엄마
구름 보고 엄마, 마을 보고 엄마, 엄마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어찌 사람뿐이랴
저 너른 들판, 산 그리고 나무
패랭이풀, 돌, 모두가 아이를 키운다
- 김완하, <엄마> 부분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지상에 엄마를 내려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는 이미 알고 있다. 삼라만상 전부가 엄마, 신이라는 것을.
커서는 자신도 엄마 노릇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