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by 고석근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 미하엘 엔데,『모모』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이 가장 많이 그린 그림이 ‘나비’라고 한다. 저 창공으로 훨훨 날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삶이 고단하셨던 어머니도 어린 우리들에게 자주 말씀하셨다. “너희들만 다 크면 훨훨 날아갈 거다!”


장자도 꿈에서 나비가 되지 않았던가?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은 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 새들이 참으로 부러웠을 것이다.


니체는 땅이 우리를 아래로 끌어당기는 힘을 중력의 악령(惡靈)이라고 했다. 땅에 살지만 끊임없이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인간의 꿈.


인간 앞에는 두 개의 삶이 놓여 있다. 무거운 삶과 가벼운 삶, 완전히 땅에 온 몸을 붙이고 사는 삶과 땅을 떠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삶.


어느 봄 날, 나비의 꿈을 꾸고 나서 장자는 중얼거렸다. “내가 나비의 꿈을 꾸었는지, 아니면 나비가 지금 나의 꿈을 꾸고 있는지.”


장자는 두 개의 삶을 동시에 살았던 것 같다. 자유자재 인간과 나비를 넘나드는 삶.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두 개의 삶 사이에서 방황한다. ‘인생 뭐 별거 있냐?’며 가볍게 살아가던 사람이 갑자기 종교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인간이 양 극단의 삶 사이에서 방황하게 된 건, 시간이 직선으로 흐르게 되면서 부터인 듯하다.


인간은 오랫동안 원형의 시간을 가졌다. 시간은 언제나 되돌아왔다. 봄은 여름이 되고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었지만, 결국에는 다시 봄이 되었다.


하루도 다시 시작되고, 일 년도 다시 시작되었다. 인생도 다시 태어난 해로 되돌아왔다.


죽는 것도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다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이 일어나며 시간은 직선으로 화살처럼 날아가기 시작했다.


째깍째깍 무한히 앞으로 흘러가는 시간,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끝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죽음의 심연이 있다.


신이 죽은 시대, 신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인간은 자유롭게 살기보다 다시 신을 찾기 시작했다.


온갖 사이비 종교들이 난무한다. 돈과 물질이 신이 되고, 과학이 신이 되고... . 우리는 직선의 시간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간이 직선으로 흐른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생각일 뿐이다. 산업사회가 만든 시간관을 우리가 내면화한 결과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안다. 시간은 만나는 사람에 따라 장소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는 것을.


독일의 동화작가 미하일 엔데는 ‘모모’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우리는 생각을 할 때, 이것이 자신의 생각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의 생각이라는 것들은 거의 다 세상이 심어준 것들이다.


자신만의 생각을 할 수가 있어야 한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깊은 내면에서 솟아올라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시간은 우리의 가슴이 느끼는 삶 그 자체인 것이다. 시계와 달력이 가리키는 시간은 우리가 편의상 만든 것일 뿐이다.


상대성 원리에 의하면, 우리가 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시간은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다 다르다. 객관적인 시간은 없다.


객관적인 시간이 있다는 한 생각에 빠지게 되면, 온갖 망상이 일어난다. 시간을 아껴 써야 해. 사람은 나이에 따라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인생은 가장 무거워진다. 싱싱한 삶은 무거움에 짓눌려 버린다.


질식할 듯한 삶을 견디지 못해 이번에는 ‘사는 게 뭐 별거 있냐?’며 허공을 날아다니다 불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우리는 시간을 가슴으로 느끼고 살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모모처럼 인간과 나비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살아갈 수가 있을 것이다.



장다리

노오란 텃밭에

나비

나비

나비

나비


- 이영도, <아지랑이> 부분



시인은 장다리 노오란 텃밭에서 나비로 변신을 한다.


나비가 되어 나비들과 함께 춤을 춘다.


아지랑이가 자욱한 세상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살아 있음의 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