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살아 있음의 환희

by 고석근

살아 있음의 환희


어머니가 오늘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오늘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제였을지도 모르겠다.


- 알베르 카뮈,『이방인』에서



폭염 속을 걸어간다. 34도. 목덜미가 불에 타는 듯 뜨겁다. 편의점에 들어가 사이다 캔을 샀다.


차가운 사이다 캔을 양 손에 번갈아 쥐고 이마에도 대고 목덜미에도 대며 걸어갔다.


이 폭염 속에서 나는 느낀다. ‘살아 있음의 환희’ 내 영혼도 몸에 꼭 붙어 있다. 내 온 몸은 비상사태다.


사막을 걸어가면 얼마나 뜨거울까? 그 작열하는 뜨거움 속에서 영혼은 한껏 피어날 것이다.


나는 평소에 ‘알아차림 명상’을 한다. 내 몸을 온전히 그대로 느끼기. 마음이 몸과 하나다.


인간이 불행한 건, ‘망상’ 때문일 것이다. 몸을 떠난 마음은 허공을 헤맨다 온갖 환영을 본다.


그 환영들이 진짜 같다. 몸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제정신을 차리고 보면, 몸과 마음은 지쳐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나는 슬픔을 느끼지 못했다. 무심하게 장례를 치르고.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엄마 산소에 갔다.


술잔을 따르고 몇 시간을 통곡했다. 나는 이 세상의 ‘이방인’이었다. 이방인은 자신조차도 남 보듯이 본다.

‘어머니가 오늘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오늘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모른다. 진짜 마음은 무의식 깊은 곳에 숨어 있기에 알 수가 없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쏘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무관심하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나서야 삶을 느끼기 시작한다.


‘감방에 홀로 앉아 있을 때 작은 창문을 통해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그는 생과 깊이 교류하는 자신,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존재하는 자신을 보았다.’


죽음을 받아들이자 그는 지금 이 순간, ‘온전히 살아 있음’을 느낀 것이다. 온 몸의 감각이 깨어난 것이다.


우리는 이방인이 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삶의 주인들이다. 우리가 깨어 있어야 주인 노릇을 잘 할 수 있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그의 저서 ‘신화의 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우리 모두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삶의 의미가 아니라 살아 있음의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의 내적 자아 및 실상과 공명하기 위함이고, 실제로 살아 있음의 환희를 느끼기 위해서이다.’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목이 마르다는 것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눈부시다는 것

문득 어떤 멜로디를 떠올리는 것

재채기를 하는 것

당신 손을 잡는 것


- 다니카와 슌타로, <살다> 부분



우리가 불행한 건,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각이 몸을 떠나 다른 곳에 가 있으면, 몸은 목이 마른 것도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도 잘 느끼지 못한다.

재채기를 할 때 우리는 살아있게 된다. 우리 몸이 하는 것들을 온 마음으로 알아차릴 때 우리는 살아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자꾸만 악(惡)해지는 우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