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사람들을 숭상하지 말라!
훌륭한 사람들을 숭상하지 말라! 백성들로 하여금 다투지 않게 할지니. 不尙賢 使民不爭 (불상현 사민부쟁).
- 노자,『도덕경』에서
공부모임 시간에 한 회원이 말했다. “ㅎ 목사님이 치매에 걸리고 나서는 예수를 부정했다고 합니다.”
한평생 청빈하게 지내신 ㅎ 목사님이?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다들 치매 환자들의 사례를 들었다.
한평생 오로지 가족을 위해 사신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고 나서는 수시로 아버지 욕을 했다고 했다.
또 한평생 조신하게 사신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리고 나서는 성적인 욕을 그리도 많이 했다고 했다.
나는 회원들의 얘기를 들으며 노자의 말을 생각했다. ‘훌륭한 사람들을 숭상하지 말라! 백성들로 하여금 다투지 않게 할지니.’
나는 ‘훌륭한 사람’을 믿지 않는다. 물론 성현은 존재하겠지만, 한평생 훌륭하게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의 밝은 면만 알려진다. 그의 어두운 면은 지워져버린다. 그렇게 조작된 우상, 훌륭한 사람.
그를 세상 사람들이 추앙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게 된다.
또한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환멸을 느끼게 된다. 그 환멸이 싫어 자신의 어두운 면을 외면하게 된다.
그래서 원효대사는 자신을 찾아와 가르침을 청하는 아들 설총에게 말했다. “착한 일을 하지 말아라!”
겉으로 빛을 추구하면 안에는 어둠이 쌓이게 된다. 그 어둠은 그를 점점 위선자가 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한 사람의 삶을 평가할 때, 그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아야 한다.
ㅎ 목사는 겉으로는 성자로 보였겠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많은 마음의 갈등을 느꼈겠는가?
그는 그 갈등들을 극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속마음이 티 하나 없이 맑아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노자의 가르침대로 훌륭한 사람을 숭상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이중인격자가 되지 않고 각자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중심을 우뚝 세워 가면, 그의 삶은 결국엔 선해진다. 선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빛을 추구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겉으로 선해 보이던 사람들이 치매에 걸려 드러나는 그의 검은 무의식, 만일 그가 평소에 그의 속내를 쉽게 드러낼 수 있었다면, 그는 훨씬 훌륭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 도달하기 힘든 기준을 세워놓고, 그 기준에 도달하라고 닦달하는 사회는 건전하지 못하다.
높이 받든 훌륭한 사람들 그 높이만큼, 아래로 깊은 ‘어둠의 자식들’이 나오게 되어 있다.
잎새는 뿌리의 어둠을 벗어나려 하고
뿌리는 잎새의 태양을 벗어나려 한다.
- 유하, <나무> 부분
나무는 빛과 어둠을 다 품었기에 온전한 나무다.
그래서 나무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우리는 나무를 무심히 바라보듯 사람도 그렇게 무심히 바라보아야 한다.
빛과 어둠을 다 품은 온전한 인간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