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위하여
꿈은 이삭을 꿈꾸는 곡물이고, 인간을 꿈꾸는 유인원이며, 다음 세계에 올 것을 꿈꾸는 인간이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꿈 이야기』에서
인천 대공원으로 가족 나들이를 했다. ㅊ 식당에서 오리구이를 주문했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창밖의 복숭아밭을 내다보았다.
설치 미술을 공부하고 있는 큰 아이에게 말했다. “현웅이는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어?”
큰 아이가 대답했다. “아빠, 나는 사람은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해. 현대사회는 새로운 환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나는 새로운 환상을 창조하고 싶어.”
인간은 상상력이 있어 ‘환상’을 만들어 내며, 큰 사회를 이룰 수 있었다. 원시인들은 신화에 의해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가족이 될 수 있었다.
그 후 인간은 종교에 의해 대제국을 꾸려갈 수 있었다. 종교는 거대한 환상의 구조물이다.
종교가 여러 부족을 하나로 묶어주지 않았다면, 대제국의 형성과 유지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문제는 ‘현대의 신화, 종교, 사상, 이데올로기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있는가?’이다.
그래서 인간은 계속 꿈을 꿔야 한다. 꿈을 꾼다고 당장에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꿈을 꾸면 우리는 더 나은 환상을 창조할 수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흉폭한 사건들, 그 사건들 앞에서 우리는 망연자실한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어?’ 하지만 우리는 어렴풋이 예상했을 것이다. 물질을 신(神)으로 섬기는 우리사회가 온전할 수 없다는 것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사회 속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 인정을 받지 못하면 우리 마음속에 어두운 그림자가 쌓이게 된다.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괴물이 되어 밖으로 뛰쳐나오게 된다.
우리는 흉악한 범인의 출몰을 접할 때마다 “인간이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며 분개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들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서서히 괴물로 변신해 갔을까?
인간은 더불어 살아야 하는 존재다. 그런데 물신(物神)은 우리를 갈가리 찢어 놓는다.
서로 아웅다웅 싸우게 한다. 우리는 모두 물신 숭배자가 되었다. 크게 보면, 현대 사회의 범죄들은 ‘물신교(物神敎)’의 광신도들이 저지르는 엽기적인 종교행위다.
우리는 꿈을 꿔야 한다. 21세기 최고의 소설가 보르헤스는 말한다. “꿈은 이삭을 꿈꾸는 곡물이고, 인간을 꿈꾸는 유인원이며, 다음 세계에 올 것을 꿈꾸는 인간이다.”
우리는 모두 ‘다음 세계에 올 것을 꿈꾸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꿈을 꾸는 한,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잘 살아 갈 수 있다.
작은 아이가 저번 ‘청년 인문학 강의’에 참석하고 난 후 공부모임회원들이 내게 말했다.
“작은 아드님이 선생님과 분위기가 비슷했어요.”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꿈을 잃지 않는 작은 아이.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소주잔을 들고 건배를 했다. “우리 모두 꿈을 잃지 말고 살아가자!”
아롱다롱 나비야
아롱다롱 꽃위에
사쁜사쁜 앉아라.
송이송이 꽃속에
고이고이 잠들어
붉은꿈을 꾸어라.
노랑꿈을 꾸어라.
오색꿈을 꾸어라.
- 목일신, <아롱다롱 나비야> 부분
나비만 꿈을 꾸랴? 둘러보면 삼라만상이 다 꿈을 꾼다.
그럼 우리가 꿈을 꾸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인간은 상상력의 동물이라 온갖 망상에 젖게 된다.
망상에 젖은 인간은 가장 무서운 괴물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꿈을 북돋아 주며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