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성이 인류를 구원하리라
여성인 나를 그저 나로 존재하게끔 하고, 그럴 수 있도록 북돋아 주고,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 세계에서 포근하게 보호받는 기분을 느꼈다.
- 추 와이홍,『어머니의 나라』에서
‘어머니의 나라’는 세계적인 로펌에서 고문 변호사로 일하던 성공한 여성 추 와이홍이 6년 동안 싱가포르와 모쒀족 마을을 오고가면서 느낀 것들을 담은 에세이다.
그녀는 어느 일요일 오후, 싱가포르강 너머로 해가 지는 걸 바라보며 생각했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삶은 결코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모쒀족 사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성인 나를 그저 나로 존재하게끔 하고, 그럴 수 있도록 북돋아 주고,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 세계에서 포근하게 보호받는 기분을 느꼈다.”
여성을 한 존재로 인정해 주는 사회에서는 청춘남녀들은 어떻게 연애를 할까? 남자가 길을 가다 마음에 드는 여자를 발견하면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아름다운 노래를 들은 여자는 답가를 불러 준다고 한다. 서로 노래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밀당’.
새들, 곤충들의 사랑처럼 아름답지 않은가! 가부장 사회인 우리의 청춘남녀들과 어떻게 다른가?
나이든 세대들은 아마 거의 ‘폭력적으로’ 연애를 했을 것이다. 남자는 남자답게 강하게 밀어붙이고 여자는 여자답게 빼는 듯 받아들이고.
어느 외국인이 우리나라 영화의 섹스 장면에 대해 강간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왜 남녀가 서로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걸까? 남성 중심의 가부장 사회에 길들여진 탓일 것이다.
내게는 풋사랑에 대한 쓰라린 경험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에 있던 한 소녀가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남자 중학교와 여자 중학교로 서로 떨어지게 된 후, 나는 그 소녀를 잊지 못해 그 소녀가 다니던 중학교로 편지를 보냈다.
거의 일주일 동안 밤마다 온 정성을 다해 편지를 썼다. 네 장의 색도화지에 여러 색깔의 글씨로 불타오르는 내 마음을 담았다.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보낸 후 돌아온 답장, 내 편지가 그대로 되돌아왔다. ‘이런 편지 보내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나는 편지를 학교에서 검열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때의 충격은 컸다. 다시는 사랑의 편지로 프로포즈를 하지 않았다.
그때 편지가 그 소녀에게 전달되었다면, 그 소녀가 거절하건 받아들이건, 나는 그 후에도 사랑의 편지로 여성들을 유혹했을 것이다.
모계사회 모쒀족의 남자들처럼 지극히 부드러운 남자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 후 ‘거친 남자’가 되어갔다.
그저께 공부모임 시간에 연애 경험담을 나눴다. 다들 폭력적인 연애였다. 남자답게 여자답게.
모계사회가 아름다운 건 ‘생명’을 중심에 두기 때문이다. 생명인 여성성이 사회의 중심에 자리를 잡으면 사회 전체가 평화로워진다.
생명의 원리는 상생과 상극이니까. 서로 미워하더라도 끝내 더불어함께 살아가니까.
가부장 사회는 엄격한 수직적인 질서를 중심에 둔다. 모든 인간이 상하관계가 된다.
가부장 사회의 수직적인 남녀의 사랑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지금 젊은 청춘들에게도 이러한 가부장 사회의 질서가 깊이 유전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냐구요? 방법을 꼽아 볼게요.
살아가는 목적과 완전한 아름다움을 찾을 때
아스라이 내 영혼이 닿을 수 있는 깊이만큼,
넓이만큼, 그 높이만큼 당신을 사랑합니다.
-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구요?> 부분
우리가 ‘아스라이 내 영혼이 닿을 수 있는 깊이만큼’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고귀한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이 세상은 또 얼마나 아름다워질 것인가?
청춘 시절에 사랑을 제대로 못해 보고서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다른 사람,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