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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몸이다

by 고석근

나는 몸이다


우리는 결코 무(無) 속에 머물러 있지 않다. 우리는 항상 충만 속에, 존재 속에 있다. 마치 얼굴이 쉬고 있을 때나 심지어 사망해 있을 때도 늘 무엇인가를 표현하지 않을 수 없게끔 되어 있는 것처럼.


- 메를로 퐁티,『지각의 현상학』에서



‘나는 몸이다’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말할 것이다. “그럼 인간이 육체만 있는 존재야? 이 살덩이가 전부야?”


나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온전히 몸으로 살아보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온전히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아이’다.


아이들은 항상 환희에 젖어 있다. 온 몸이 웃고 있다. 잠시 시무룩하더라도 금방 하나의 경쾌한 음악이 된다.

이런 아이는 단지 육체적 존재인가? 영적인 존재인가? ‘둘 다’일 것이다. 몸과 영혼이 완전히 하나인 거룩한 존재.


노자는 ‘마음과 몸을 항상 하나로 붙어 있게 하라’고 했다. 아이는 어른이 되면서 마음이 자꾸만 몸을 떠나간다.


허공을 떠도는 마음들을 느끼면서 어른들은 생각한다. ‘마음이 몸과 따로 있나 보다.’


이 생각이 굳게 자리를 잡으면 ‘정신주의’에 빠져든다. 온갖 망상에 사로잡힌다. 사이비 종교의 신자가 되어 잘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인간은 한 생각에 빠지면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다. 장자가 경고한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된다.


자신의 생각이 견고한 성(城)을 이루고 하나의 우주가 된다. 사는 게 헛헛해진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프랑스의 철학자 메를로 퐁티는 이런 망상에 망치를 들고 내리친다. “우리는 결코 무(無) 속에 머물러 있지 않다. 우리는 항상 충만 속에, 존재 속에 있다.”


우리는 ‘인간은 도대체 무엇인가?’를 묻는다. 길을 잃었을 때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라고 한다.


인간을 알고 싶으면 원초적 인간, 아이를 보면 된다. ‘아이는 항상 충만 속에, 존재 속에 있다.’


아이와 이 세상은 나눠지지 않는다. 바람처럼 달려가는 아이, 그는 바람과 하나이고 햇살과 하나이고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삼라만상과 하나이다.


인간은 천지자연과 하나로 어우러지는 존재인 것이다. 인간이 개체로 따로 존재한다는 생각은 단지 생각일 뿐이다.


인간을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규정하게 되면, 다른 사람과 다른 사물들이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는 망상에 빠지게 된다.


현대인의 극단적인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나오게 된다. 이 망상이 결국에는 전철역 살인범들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인간은 본성에 맞게 살지 않으면 정신질환에 시달리게 된다. 정신질환자들은 자신을 해치거나 남을 해치게 된다.


우리는 존재를 회복해야 한다. 기후위기 등 모든 인류의 위기는 인간이 자신을 ‘생각하는 동물’로 착각한 업보다.


인간은 오로지 몸이다. 우리는 몸 자체로 돌아가야 한다. 고요히 몸으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느낀다.


우리의 몸이 삼라만상과 하나로 소통하고 있는 것을. 우주와 함께 춤추고 있는 것을. ‘텅 빈 충만’ 그 자체라는 것을.



내 몸의 모든 움직임은,

바로 내 넋의 가면이다.

비 오는 날 내가 다소 우울해지면

그것은 즉 넋이 우울하다는 것이다.

내 넋을 전 세계로 해방하여

내 넋을 널찍하게 발동케 하고 싶다.


- 천상병, <넋> 부분



살덩어리가 되어 버린 몸은 우리의 넋을 가둔다. 한평생 몸 안에서만 살아가야 하는 넋은 언제고 밖으로 뛰쳐나오려 한다.


연쇄 살인범은 말한다. “제 안에 악마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넋을 전 세계로 해방하여 널찍하게 발동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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