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의 위기
인지혁명 이후, 사피엔스는 이중의 실재 속에서 살게 되었다. 한 쪽에는 강, 나무, 사자라는 객관적 실재가 있다. 다른 한 쪽에는 신, 국가, 법인이라는 가상의 실재가 존재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상의 실재는 점점 더 강력해졌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강과 나무와 사자의 생존이 미국이나 구글 같은 가상의 실재들의 자비에 좌우될 지경이다.
- 유발 하라리,『사피엔스』에서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 그럴까? 죽음을 몰라서?
아마 그렇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 것이다. ‘우리는 죽지만, 우리의 후손이 있어.’
그들은 후손에게서 부활할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어떤가? 후손을 남기고서도 왜 죽음을 두려워할까?
나는 ‘제대로 후손을 남기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인간에게는 ‘정신’이라는 게 있다.
단지 육체적인 후손만 있어서는 만족이 되지 않는다. 원시인들은 죽음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유한한 삶이면서 동시에 영원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신화가 그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럼 신화는? 바로 인간의 인지혁명 덕분이다. 인지혁명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인간의 새로운 사고방식이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전설, 신화, 신, 종교는 인지혁명과 함께 처음 등장했다”며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라고 말한다.
그는 “원시인들이 유령과 정령을 믿음으로써, 그리고 보름달이 뜰 때마다 불 주위에 모여 함께 춤을 춤으로써 사회적 질서를 강화했다”고 말한다.
원시인들이 상상한 유령과 정령들, 그것들은 원시인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왔을 것이다
그래서 원시인들은 자연스레 하나가 되고, ‘영원한 현재’의 삶을 사는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럼 현대인은 어떤가? 제대로 하나가 되어 있는가? 현대인의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일 것이다.
인간의 상상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상상력은 사실이 아닌 허구이지만, 진실해야 한다.
사이비 종교가 허구의 신에 의해 신도들을 하나로 묶지만, 끝내 신도들이 흩어지게 된다.
그들의 신이 진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과거의 신의 자리에 돈, 국가, 지구촌 등이 있다.
돈, 국가, 지구촌이 우리를 하나가 되게 하는가? 우리는 느낀다. 그것들에 의해 우리는 제대로 하나가 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유발 하라리는 말한다. “현대의 사업가와 법률가들은 사실상 강력한 마법사들이다. 이들과 원시 샤먼 간에 주된 차이는 현대 법률가들이 하는 이야기가 훨씬 더 이상하다는 점이다.”
원시인들은 신화라는 허구에 의해 아름다운 하나가 되어 살았지만, 현대 문명인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져 살아간다.
현대 인류의 위기는 상상력의 위기이다. 우리의 깊은 마음속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상상력, 그런 상상력으로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한편의 시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우리들은 죽이지 않으면 안된다
숱한 것을 죽이지 않으면 안된다
숱한 사랑하는 것을 사살하고 암살하고 독살해야 한다
- 다무라 류이치, <사천(四千)의 날과 밤> 부분
시인은 이 시대의 새로운 '사제(司祭')다.
그들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사살하고 암살하고 독살한다.
한 편의 시를 낳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