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칭성 인류학
현대세계가 다다른 막다른 골목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제 생각으로는 그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현생인류의 ‘징표’이자 현생인류의 ‘마음’의 기층을 이루고 있는 유동적 지성=무의식에서 직접 출현하는, 새로운 지성의 형태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시도 자체를 다시금 ‘대칭성 인류학’으로 부르고자 합니다.
- 나카자와 신이치,『대칭성 인류학』에서
중3때였다. 그날도 보리밥에다 부추, 고추장을 넣고 비빈 벌건 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마당에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헉!’ 서울에 사는 사촌 누나가 왔다. 나는 밥그릇을 밥상 밑에 슬쩍 넣고 웃으며 일어섰다.
나는 마당에 당당하게 서 있는 서울내기 사촌 누나 앞에서 갑자기 야만인처럼 초라해졌다.
그렇다. 오두막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던 사람은 옆에 대궐 같은 저택이 들어서게 되면 갑자기 불행해진다.
우리는 삼라만상을 두 개로 나눠본다. 선과 악, 좋은 것과 나쁜 것, 귀한 것과 천한 것... .
이런 세상에 사는 사람은 행복할 수가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문명사회가 바로 이러한 ‘비대칭성의 사회’다.
일본의 신화학자 나카자와 신이치는 현대세계가 다다른 막다른 골목에서 빠져나갈 방법으로 ‘대칭성 인류학’을 제시한다.
“그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현생인류의 ‘징표’이자 현생인류의 ‘마음’의 기층을 이루고 있는 유동적 지성=무의식에서 직접 출현하는, 새로운 지성의 형태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시도 자체를 다시금 ‘대칭성 인류학’으로 부르고자 합니다.”
그는 우리의 의식은 비록 이 세계를 두 개로 나눠서 보지만, 우리의 무의식은 ‘만물은 차별 없는 하나(萬物齊同)’로 본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저서 ‘대칭성 인류학’에서 야생 염소 신화를 소개하고 있다.
‘한 젊은 사냥꾼이 숲에서 한 여자를 따라 동굴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는 염소들이 대가족을 이뤄 살아가고 있었다. 여자는 털가죽을 벗은 야생 염소였다. 염소들의 생활을 깊이 체험한 사냥꾼이 인간 사회에 돌아가게 되었을 때, 그의 부인인 암염소는 그에게 당부한다. 염소를 사냥할 때는 그들이 모두 인간이란 사실을 잊지 말고 사체에 경의를 표하며, 모든 암염소와 그 새끼들은 당신의 부인과 아이들이니 사냥하지 말고 처남인 숫염소만을 사냥하라고.’
이러한 대칭성의 신화에 의해 원시인들은 오랫동안 ‘개체를 뛰어넘어 전체와 부분을 일치시키고 인간과 동물, 인간과 신들 간에도 서로 소통하고 공존하는 세상’을 이뤄왔던 것이다.
현대인은 비대칭성의 사고에 의해 눈부신 물질 문명사회를 이룩하였다. 비대칭성의 사고는 다른 사람, 다른 사물을 함부로 지배하고 파괴하게 된다.
‘내가 이 세상의 중심이야!’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 한 생각에 사로잡히면, 그 생각으로 살아간다.
이 한 생각에 의해 인류는 기후위기 등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지게 되었다. 새로운 사고, 대칭성의 사고를 하지 않고는 인류는 종말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현대철학은 인간은 ‘의식적 존재’가 아니라 ‘무의식적 존재’임을 보여주고 있다. ‘대칭성 인류학’을 향한, 새로운 문명의 시원(始原)일 것이다.
동물을 만날 때마다 언제나 자신을 가장 미천한 동물로 여기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상대방을 최고의 존재로 여기게 하소서
나쁜 성격을 갖고 죄와 고통에 억눌린 존재를 볼 때면
마치 귀한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그들을 귀하게 여기게 하소서
- 달라이 라마, <달라이 라마의 기도문> 부분
인류는 수만 년 동안 대칭성의 사고로 살아왔다.
비대칭성의 사고로 살아가는 현대문명시기는 아주 짧다.
우리의 마음은 늘 불안하다. 우리의 무의식이 우리의 의식에게 “그렇게 살면 안 돼!”하고 쉼 없이 소리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