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해질 권리

by 고석근

불행해질 권리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야만인은 반항적으로 말했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 올더스 헉슬리,『멋진 신세계』에서



‘멋진 신세계’에는 불행이 존재하지 않는다. 불쾌한 감정이 들면, 감정의 정도에 따라 자그마한 ‘소마(일종의 마약)’ 몇 알 삼키면 된다.


그러면 그들은 다시 행복해진다. 행복만이 가득한 세계다. ‘젊음과 늙음’의 의미가 사라지고 ‘죽음’조차도 행복해지는 곳이다.


‘불행’이 없는 오로지 ‘행복’이라는 감정만 느끼고 살아가는 멋진 신세계 사람들, 그들은 과연 진정으로 행복할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두 개로 나눠져 있다. 선과 악, 행복과 불행, 잘 사는 것과 못 사는 것... .

그런데 실제의 삶이 이렇게 선명하게 나눠질까? 오로지 선만 있거나 악만 있는 경우가 있는가?


행복과 불행이 선명하게 나눠지는가? 노자는 이 세상의 실상을 ‘대극합일(對極合一)’이라고 말한다.


양극으로 보이는 것들이 실은 하나라는 것이다. 우리는 실제의 삶에서 경험한다. 행복과 불행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을.


맛집에서 맛있는 밥을 먹었는데, 잠시 후에는 속이 더부룩해 불행한 느낌이 온 몸에 가득해지는 것을.


힘겹게 산을 오르다보면, 행복한 느낌이 온 몸에 가득 퍼져가는 것을. 그래서 삶에서 행복만 떼어 멋진 신세계를 만들겠다는 발상은 망상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멋진 신세계를 향해 가고 있지 않는가? 거리에 즐비한 커피 전문점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며 고된 하루의 일과를 견뎌낸다. 밤이 되면 술을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푼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을 믿는다. 미래사회에는 과학이 우리의 행복을 보장해 줄 거야!


‘멋진 신세계’에 대한 신념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듯하다.


영국의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는 멋진 신세계의 문명을 거부하는 야만인이 나온다.


그는 소리친다.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총독이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하고 비웃자 야만인은 반항적으로 말한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중요한 삶의 태도로 ‘주이상스’를 내세운다. ‘희열’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주이상스는 우리의 깊은 마음속에서 솟아올라오는 기쁨이다. 밖에서 주어지는 자극, 쾌락과는 다르다.


쾌락은 일시적이나 희열은 온 몸에서 은은하게 지속된다. 나는 쾌락과 주이상스의 차이를 경험적으로 안다.

오래 전에 고스톱의 쾌락에 취해 살았던 적이 있다. 그야말로 멋진 신세계였다. 밤 두시의 공기를 가르며 치켜 든 화투장을 바닥에 깔려 있는 화투장을 내리칠 때, 나는 극한의 쾌감을 맛보았다.


하지만 그 후 시 공부를 하며, 도반들과 함께 한 술자리의 즐거움, 고스톱은 유치했다.


밤이 이슥하도록 우리의 대화는 무르익어갔다. 무수한 세계가 피어나고 지고... 우리의 몸은 천지자연과 하나로 어우러져갔다.


차원이 달랐다. 나는 ‘나의 길’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나의 길을 가는 희열, 커다란 고통속의 기쁨이었다.


라캉이 말하는 주이상스였다. 이런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쾌락이 행복의 전부인 줄 안다.


그래서 그들은 소마에 의해, 의학적인 처방에 의해, 과학 기술에 의해 인간은 행복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한다.

이런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엄청난 권력을 쥐고 있으면 어떻게 되나? 멋진 신세계로 가게 된다.


총독처럼 멋진 사람들을 비웃게 된다. “어찌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한단 말인가!” 진정한 행복은 밖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때, 그리하여 신을 원할 때,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하게 될 때, 죄를 원하게 될 때, 하늘이 가슴에 안겨오듯 그렇게 온다.



내게 행복이 온다면

나는 그에게 감사하고

내게 불행이 와도

나는 또 그에게 감사한다


한 번은 밖에서 오고

한 번은 안에서 오는 행복이다


- 김현승, <행복의 얼굴> 부분



‘행복의 얼굴’


오랫동안 자신의 길을 걸어가며 다가오는 모든 것을 품은 사람이 갖게 되는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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