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고 살아라!
성인은 자신을 뒤로 하기에 자신이 앞서게 되고, 자신을 내던지기에 자신이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게 된다. - 노자
버스가 왔다. 몇 사람이 우산을 든 채 버스 앞으로 다가갔다. 팽팽한 긴장 속에 순서가 정해진다.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버스에 오른다.
이런 경험을 오래 하다보면 ‘눈앞의 이익에 몰두하는 소인배’가 되어버린다. 나중에는 자신이 왜 그리도 아득바득하게 사는지도 모르게 된다. 계속 이익을 얻은 것 같은데 인생이란 큰 판을 보면 완패다.
바둑으로 말하면 계속 상대방의 돌들을 잡았는데, 나중에 보니 자신의 허름한 집들이 상대방의 커다란 집에 갇혀 있는 것이다. 전투에는 매번 승리했는데 전쟁에는 지고 만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의 존재 법칙이 상생(相生)이기 때문이다. 식물이 산소를 내놓고 동물이 이산화탄소를 내놓아야 모두가 살 수가 있는데, 욕심을 부려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내놓지 않는다면 모두 죽게 될 것이다.
동식물들은 이런 이치를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본능에 따라 자연스레 행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서로 경쟁하다보니 욕심에 눈이 멀어 자신에게 온 것들을 필요 없이 갖게 된다.
해결책은 사회가 출혈적인 경쟁을 방지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무한 경쟁을 먹고 사는 제도이니 쉽게 경쟁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경쟁의식에 물든 자신의 마음을 정화시켜야 한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의 헛된 욕심에 젖어 결국은 인생의 실패자가 되어 버리는 자신을 죽여 버려야 한다.
죽어야 사는 법이다. 씨앗이 썩어야 싹이 돋고 싹은 자신을 죽여 줄기를 키워야 한다. 줄기는 자신을 죽여 잎을 틔우고 꽃을 피워야 한다. 꽃은 자신을 죽여 열매를 맺어야 한다.
죽으면서 사는 것, 이것이 삶의 이치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한 경쟁’에 젖어 왜 달리는 지도 모르고 무한정 달리고 남을 왜 이겨야 하는지도 모르고 남을 무조건 이기려 한다.
그러다보면 ‘오늘도 무사히...... .’ 계속 승리하여 살아남았는데 늘그막에 인생의 패배자로 남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최후의 승자는 ‘신자유주의’ 뿐인 것이다. 모든 사람은 신자유주의를 위해 노예의 삶을 살았을 뿐이다.
버스를 타며 조금 느긋하게 남에게 지며 뒤에 타는 사람만이 결국은 인생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 처음이 어렵지 이런 마음으로 살다보면 지고 사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될 것이다.
그는 어느새 자신이 인생의 승리자가 되어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인생이란 참으로 어려우면서도 쉬운 것일 것이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들이 이미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아버지께서는 살아생전에 항상 말씀하셨다. “지고 살아라!” 험난한 시대를 헤쳐나가시면서 깨달은 삶의 지혜일 것이다.
쇠붙이와 점토, 새의 깃털이
모진 시간을 견디고 소리 없이 승리를 거두었어요.
고대 이집트의 말괄량이 소녀가 쓰던 머리핀만이
킬킬대며 웃고 있을 뿐.
왕관이 머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어요.
손은 장갑에게 굴복하고 말았어요.
오른쪽 구두는 발과 싸워 승리했어요.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박물관》부분
역사는 승리자들의 기록이라고? 그런데 그들은 어디에 있나? 그들의 머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은 왕관이 그걸 증명한다고? 왕관이 그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