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

by 고석근

1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


이 세상은 무섭고 어둡고 잔인한 그대로, 완전한 황금 연꽃의 세계다.


- 조셉 캠벨,『블리스로 가는 길』에서



우리는 학교에서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배웠다. 그의 이론은 ‘적자생존(適者生存),적응을 잘하는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진화론을 ‘약육강식(弱肉强食), 약한 자는 강한 자의 먹이가 된다는 이론’으로 받아들였다.


결국 우리는 진화론에 의해 이 세상에서는 ‘강한 개체가 살아남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 ‘위너(Winner, 승자)와 루저(Loser, 패자)’라는 말이 유행하게 되었다. 우리는 승자, 강한 자가 되기 위해 질주했다.


우리 사회에는 수시로 승자독식(勝者獨食)이라는 태풍이 휩쓸고 갔다. 잔해들만 남은 세상, 황량하다.


우리가 이 세상을 약육강식, 적자생존으로 바라보게 되면, 우리는 ‘개체(個體)’를 중심에 두게 된다.


‘나’를 이 세상의 중심에 두게 되고 오로지 ‘나’를 위해 살아가게 된다. 남들은 나의 도구, 수단이 되어 버린다.


개체들만 득시글거리는 세상에서는 전체가 허물어진다. 강자인 개인들은 무수히 많은 데 인류는 풍전등화(風前燈火)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포식자들’을 보며 생각한다. 그들은 약한 자들을 먹어야 산다.


그들의 하루하루도 고달프다. 그들은 먹이를 발견하면 전력 질주한다. 피식자가 된 얼룩말도 전력 질주한다.

사자가 앞발로 얼룩말의 등을 부여잡는다. 얼룩말이 비틀거리는 사이, 다른 사자가 얼룩말의 목을 물고 늘어진다.


얼룩말이 픽 쓰러진다. 사자의 입에 피가 흥건하다. 이 때 얼룩말의 심정은 어떨까?


느긋하게 보고 있는 우리의 눈에는 얼룩말이 너무나 가엾어 보인다. 얼룩말도 우리와 같을까?


얼룩말은 전력 질주했기에, 지금 온 몸의 힘이 다 빠져 있을 것이다. 몸의 힘이 다 빠져 나가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얼룩말은 무의식중에 자신의 생(生)이 다 했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본능에 따라 그는 순순히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이것은 모든 생명체들의 삶의 방식일 것이다. 얼룩말을 먹는 사자도 사자로서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에 따라 얼룩말을 먹고 있는 것이다.


얼룩말과 사자, 그들은 지금 천지자연(天地自然)의 이치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약육강식, 적자생존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그러한 해석은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되게 된다. 우리는 다들 강자, 포식자가 되고 싶어 한다.


아주 당당하게 말한다. “너는 내 밥이야!” 인간은 눈부신 물질문명을 이룩하였다. 정글의 야수들처럼 살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왜 우리는 ‘1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에 살아야 하는가? 서로 오순도순 살아도 잘 살아갈 수 있는 문명을 세워놓고는.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말한다. “이 세상은 무섭고 어둡고 잔인한 그대로, 완전한 황금 연꽃의 세계다.”


사자와 얼룩말을 강자와 약자의 치열한 생존 싸움으로 보게 되면, 이 세상은 ‘무섭고 어둡고 잔인한’ 생지옥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사자와 얼룩말은 지금 서로의 살을 주고받고 있다.


얼룩말이 그동안 풀이 주는 풀의 살을 먹고 살아왔듯이, 그도 이제 자신의 살을 사자에게 나누어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천지자연의 비의(秘義)다. 이 세상은 서로의 살을 나누는 신나는 살의 공동체다. ‘완전한 황금 연꽃의 세계’다.



손님 찾아가면 슬금슬금 꼬리를 감추더니

주인 나오면 극성으로 짖어대고

주인이 말리면 더 큰 용맹 발휘하여

물려고 덤벼드는 저 개는

지가 개가 아닌 줄 아는 모양이다


개에게는 저 짓이 생존의 방식이라지만

개는 자신이 개임을 부정해야 개밥 먹을 수 있다지만


- 백무산, <뒤에서 바람부니> 부분



개는 개임을 부정해야 개밥을 먹을 수 있다.


‘뒤에서 바람부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등 뒤에도 바람이 분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인간임을 부정한다. 그렇게 해야 밥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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