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산다는 것
하버드 대학 경제학 박사인 타일러 코웬도 비슷한 주장을 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평균으로 대변되는 중간층을 소멸시켜 양극화를 발생시킨다고 말하며, 인공지능과 같은 지능형 기계가 출현하면서 ‘평균의 시대는 끝났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기계가 사람들의 일자리를 대체하기 때문이죠.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소수의 사람은 더욱 부자가 되고 기계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은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 한지우,『AI는 인문학을 먹고 산다』에서
최근에 ‘청년 인문학’을 강의하며 참담했다. 많은 청년들이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는 청년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치열하게 자신들의 길을 찾아가는 청년들도 많았다.
문제는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면, ‘그들의 안정된 삶, 최소한의 의식주가 해결되느냐?’는 것이었다.
아, 왜 우리사회는 복지사회로 가지 않는 걸까? 내 또래의 노년층들과 얘기해보면 거의 다 복지를 반대한다.
“젊은 사람들이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해! 일할 때는 늘렸는데.”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며, 절망한다.
노년층들과 지금 젊은 청년들의 삶의 경험은 다르다. 노년층들은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이었다.
배불리 먹는 게 최고였다. 그래서 많은 노년층들은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그렇게 하여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지금 젊은 청년들이 한심해 보일 것이다. 지금 청년들이 우울증 약을 먹으며 버틴다고 하면, 그들은 자신들도 우울증 약을 먹는다고 말한다.
나는 그들의 말도 일정부분 맞는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명문대를 나와 기술을 배우는 젊은이들도 많다.
하지만 많은 부모님들이 자식을 육체노동자로 기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육체를 쓰는 직업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사회가 ‘독일의 교육방식’을 많이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독일에서는 중고등학교 때 인문계 진학과 기술계 진학으로 나눠진다고 한다.
적성에 따라 기술중학교, 기술고등학교로 진학한다고 한다. 학력에 따른 임금 차이가 적고 복지가 잘 되어 있기에, 대다수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다고 한다.
앞으로 인공지능시대가 온다고 한다. 흔히들 말한다. “앞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을 거야. 창의적인 소수가 대다수 사람들을 먹여 살릴 거야!”
지금 벌써 그런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데, 아직도 우리의 학교교육은 지식위주의 입시교육을 벗어나지 못하고, 복지사회를 향한 걸음마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희망이 없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우울증이 심해지고 죽음의 본능에 휩싸이게 된다.
죽어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어른들이 “약해 빠졌어! 일자리는 늘렸어! 일을 해!” 이렇게 말해야 하나?
인공지능시대에는 근면성실한 사람이 아니라 인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하고 창의적인 사람이 성공한다고 한다.
근면성실로 자수성가한 기성세대는 깊이 자신들을 성찰했으면 좋겠다. 더 이상 ‘꼰대’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래는 계속 태어나 자라는 젊은이들의 것이고, 기성세대는 그들이 가는 길의 디딤돌이 되어야 하니까.
그동안 무엇을 하였느냐는 물음에 대해
다름 아닌 인간을 찾아다니며 물 몇 통 길어다 준 일밖에 없다고
- 김종삼, <물통(桶)> 부분
우리는 무심코 듣는다. “그동안 무엇을 하였느냐?”
우리는 시인처럼 대답할 수 있을까? “다름 아닌 인간을 찾아다니며 물 몇 통 길어다 준 일밖에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