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詩視한 세상

by 고석근

시시詩視한 세상


의학, 법률, 사업, 기술은 고귀한 업적이지, 하지만 시와 낭만, 사랑은 우리가 살아 있는 이유야.


- 피티 위어 감독,『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최근에 식당과 술집에 가면서 ‘무인주문기계’와 맞닥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기계의 명령을 들으며 주문을 하는 게 영 불편하다.


이런 기계들이 생기면서 일자리는 얼마나 줄어들었을 것인가? 요즘엔 편의점 알바도 경력을 요구한다고 한다.


‘인공지능과 기계에 대체되는 인간’ 우리는 점점 우울해진다. ‘삶의 주인’의 자리를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 항상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며 살아간다. 자신을 더 없이 소중한 존재로 생각하게 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자리를 빼앗아가고 있는 시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건가?


많은 미래학자들이 ‘자신만의 길’을 가라고 말한다. 그 길은 기계가 갈 수 없으니까.


나는 인공지능시대의 도래를 모르고 살던 시대에, 오랫동안 ‘나만의 길’을 찾아 헤맸다.


나의 성격이 돈키호테(이상주의자)여서 그랬을 것이다. 나만의 길을 찾고 보니, 인공지능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아, 어쩌다 나는 인공지능시대에 맞는 삶을 살게 되었구나!’


나는 나의 길을 찾으며, 인간은 ‘시(詩)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시가 없는 삶과 시가 있는 삶은 전혀 다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주인공 키팅 선생은 “시와 낭만, 사랑은 우리가 살아 있는 이유야.”라고 말한다.

시가 없는 세상은 시시하다. 죽어 있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 삭막한 세상이다. 하지만 시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전혀 달라진다.


‘시시한 세상’이 ‘시시詩視한 세상’으로 바뀐다. 나는 오래전에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그 감동을 다시 경험하고 싶어서, 들판으로 자주 나갔다. 씨 뿌리는 사람들을 보았다.


‘오! 아무런 감동이 오지 않았다.’ 나의 눈이 밀레의 눈처럼 맑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밀레가 씨 뿌리는 사람을 보았을 때, 그의 눈은 시적인 눈이었다. 시는 자신만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어린 아이들에게서 시적인 눈을 발견한다. 어린 아이들은 무엇을 봐도 자신만의 눈으로 본다.


기존의 언어에 오염되어 있지 않은 눈은 맑디맑다. 우리는 언어를 익히며 다른 사람, 사물을 언어로 보게 된다.


상투적이게 된다. 거기에는 자신만의 마음이 실려 있지 않다. 나의 마음이 없는 세상은 죽어 있는 세상이다.

나는 30대 후반에 시를 공부하며, 내가 얼마나 삭막한 존재가 되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우선 나의 마음을 맑게 해야 한다! 나는 시를 쓰고, 좋은 시를 필사하고 낭송하며 나의 마음의 미세한 움직임을 느껴 보았다.


마음은 천지자연 그 자체였다. 시의 마음은 삼라만상과 함께 춤을 추었다. 온 몸으로 세상과 만나는 것, 그것이 시였다.


시적인 눈을 갖게 되면, 키팅 선생이 말하는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현재를 살아라!”가 된다.

시간이 옆으로 흐르지 않고 분수처럼 위로 솟구쳐 오르게 된다. 이런 시적인 경험을 하게 되면, 우리는 ‘살아있게’ 된다.


아이처럼 신나는 마음은 인공지능시대의 우울을 이기게 된다. 시의 마음을 잃어버린 현대인, 하늘에는 항상 잿빛 구름이 드리워져있다.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 안도현, <연탄 한 장> 부분



삼라만상을 보면, 다 서로에게 ‘연탄 한 장’ 같은 존재다.


태양은 나무에게 나무는 지나가는 새에게 새는 나무에게 나무는 벌레에게 벌레는 새에게 새는 하늘에게... .

천지자연은 거대한 한편의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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