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
나에 대한 자신감을 잃으면 온 세상이 나의 적이 된다. - 랄프 왈도 에머슨
아주 오래 전에 초등학교 3학년이던 막내 아이가 일기 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뭐라고 한참을 쓰는 듯하더니 골똘히 명상에 잠겨 있다.
‘무슨 생각을 저리도 깊이 하나?’하고 일기장을 슬쩍 훔쳐봤더니 ‘반성란’에 갇혀서 꼼짝달싹 못하고 있다.
‘뭐 잘못했지?’ 혼자 중얼거린다. 아무리 찾아봐도 잘못한 게 없나 보다.
나는 속으로 킥킥 웃으며 막내둥이가 ‘일부러라도 뭘 잘못할 걸... ’하고 반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IMF 사태’가 일어났을 때 우리는 ‘내 탓이오!’ 스스로의 가슴을 치며 ‘국가 부도 사태 죄인들’을 다 용서해 주었다.
‘반성(反省)’은 말 그대로 ‘반대로 성찰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엔 지혜의 빛이 있다.
그래서 우리의 눈엔 자신과 세상의 잘잘못과 해결책이 훤히 보인다. 이 지혜의 빛을 자신 안으로 향하게 하자는 게 반성이다.
원시 부족사회가 철기문명을 거쳐 대제국이 탄생하면서 ‘반성의 철학’이 등장한 것이다. 서양의 소크라테스, 동양의 공자가 이 반성의 철학을 열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여 자신의 인품을 높이고 세상을 아름답게 가꿔가는 힘을 기르는 공부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잘못만 지적하여 자책하는 것으로 반성하는 공부를 했다.
이렇게 형성된 인간형은 민주주의적 인간형에 맞지 않는다. 근면성실하게 죄의식에 시달리는 인간이 어찌 ‘세상의 주인(민주)’이 될 수 있겠는가?
아, 반성하는 자 고통으로 가득 찬 날들
차라리 지옥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 함민복,《우울氏의 一日 8》부분
우리는 어린 시절 오랫동안 반가사유상처럼 '반성'하는 묵언 수행을 했다. 그 결과 어른이 된 우리들은 어찌 되었는가?
다들 ‘우울氏’가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급기야는 ‘차라리 지옥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지독한 메저키스트(피학증 환자)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