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떠나라

by 고석근

집을 떠나라


그 꽃은 이렇게 좀 심술궂은 허영심으로 그를 금방 괴롭혔다. (...) 그 꽃은 어찌 됐든 어린 왕자를 후회하도록 만들려고 억지 기침을 했다. 이렇게 해서 어린 왕자는 (...) 심각하게 생각했고 그래서 아주 불행하게 되었다.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왕자』에서



나는 중학교를 마치고 고향을 떠났다. 이모님 댁에서 눈칫밥을 먹고 혼자 자취를 하며 힘든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그 후는 계속 혼자서 세상을 헤쳐 나갔다. 결혼을 하고 고향집에 갔을 때, 며칠을 잠만 잔 적이 있다.


부모님이 계신 고향집은 얼마나 편안한 곳인가? 이제 고향집은 내게 하나의 유토피아로 남아 있다.


만일 계속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하는 나약한 인간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일찍이 집을 떠났기에 나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삶’에 익숙하다. 나는 지금도 계속 ‘어디론가 떠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현대철학자들이 말하는 ‘노마드(도시 유목민)’의 삶이 편안하다. 전래동화들을 보면 다들 어릴 적에 집을 떠난다.


심청은 용왕의 제물이 되어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간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는 효녀가 되어 집을 떠나는 것이다.


그녀는 푸른 바닷물이 넘실대는 인당수에 몸을 던진다. 그렇게 죽어 그녀는 황후가 된다.


그녀가 집에 계속 머물렀다면, 그녀는 맹인 아버지와 함께 쓸쓸하게 살다 일생을 마쳤을 것이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도 어린 남매는 어머니를 잡아먹은 호랑이에게서 도망쳐 집을 떠난다.


계속 뒤쫓아 오는 호랑이를 피해 하늘에 오른 남매는 해와 달이 되었다. 남매는 집을 떠났기에 해와 달이 된 것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생택쥐페리의 동화 ‘어린왕자’에서도 어린왕자는 자신이 살고 있던 별을 떠난다.


잘 살고 있던 별에 어느 날 불쑥 나타는 꽃, ‘그 꽃은 이렇게 좀 심술궂은 허영심으로 그를 금방 괴롭혔다. (...) 어린왕자는 심각하게 생각했고 그래서 아주 불행하게 되었다.’


어린 왕자는 철새들의 이동을 이용해 정든 별을 떠난다. 어린 왕자를 괴롭힌 심술궂은 꽃은 좋은 꽃인가? 나쁜 꽃인가?


모든 아이에게는 부모에 대한 깊은 상처가 있을 것이다. 심술궂은 꽃은 부모에 대한 은유일 것이다.


동물로 태어나 인간으로 길러지는 아이에게 부모는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였을까?


그 상처를 딛고 한 인간으로 성장해가야 하는 게 인간의 가혹한 운명일 것이다. 그 가혹한 운명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을 극복해가는 어린 왕자.


그는 어른들의 거짓 세계에 물들지 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어린왕자는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사, 생택쥐페리의 ‘내면아이’다.


생택쥐페리는 사하라 사막에서 불쑥 나타난 내면아이를 만난 것이다. 내면아이는 우리 안에서 울고 있는 아이, 우리의 미숙한 영혼이다.


그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 안의 내면아이를 만나고 내면아이를 성숙하게 한 것이다.


그는 온전한 인간이 되어 집으로 돌아간다. 그는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가 인간세계에서 살다 갔다.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거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 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 김수영, <사랑의 변주곡(變奏曲)> 부분



복사씨와 살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을 알 때, 우리는 온전한 인간이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온 세상이 사랑에 미쳐 날뛰는 기적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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