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

by 고석근

아는 만큼 보인다


어른들은 대답했다. “아니, 모자가 왜 무서워?” 내 그림은 모자를 그린 게 아니라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뱀을 그린 것이다.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왕자』에서



어린왕자가 그린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어른들에게는 모자가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눈은 ‘생각의 틀’이 보는 것을 본다.


눈부신 근대문명은 아는 만큼 보이는 근대인에 의해 건설되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안다고 생각해서 마구 지배하고 파괴하였다.


그때의 시각, 원근법은 얼마나 무서운가! ‘나’가 세상의 중심이다. 이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나는 이 세상의 왕이 된다. 이 세상의 왕인 인간에 의해 지구가 황폐화되어 인류는 종말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아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는 것은 힘이 되기 때문이다. 나 아닌 모든 것을 지배하려 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는 만큼만 보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린왕자의 그림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그들은 골똘히 생각할 것이다.


“이게 뭘까?” 모르는 사람은 겸손하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소크라테스는 인류의 스승이다.


그들은 상상을 한다. 상상에서는 인간은 다른 존재가 된다. 장자는 꿈에 나비가 되었다.


창공을 날아다니는 나비는 장자의 영혼이다. 인간의 영혼은 삼라만상과 하나로 어우러진다.


인간은 상상을 하고 꿈을 꿀 때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너와 나의 경계가 사라진다.


인간의 사유방식은 로고스와 미토스다. 로고스는 이성적인 사고방식이고, 미토스는 신화적인 사고방식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미토스에 의해 살아왔다. 그러다 철기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간의 사유방식은 미토스에서 로고스로 바뀌었다.


이제 인류는 로고스의 사유방식을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로고스가 없는 미토스는 위험하다.


미토스는 맹목적이기 때문이다. 로고스에서 해방된 인간은 자칫 광기에 젖어들기 쉽다.


생택쥐페리는 아직 로고스를 배우지 못한 신화 속의 어린왕자가 어떻게 온전한 인간으로 성숙해 가는지를 보여준다.


어린왕자는 계산적이고 위선적인 어른들의 세계 속에서 사막의 현자 여우를 만나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는 뱀에 물려 죽는다. 비행사 내면의 ‘유아성(幼兒性)’이 죽고 재탄생했다는 뜻이다. 비행사는 이제 온전한 인간이 된 것이다.


온전한 인간은 자유로운 개인이면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인간이다.



씨 속에는

나비 떼가 숨어 있다


- 최기락, <씨> 부분



시인은 씨 속에서 나비 떼를 본다.


씨를 보면서도 나비 떼를 보지 못하는 어른들, 그들의 눈에는 도무지 신나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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