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 앞의 잣나무!
“의례가 뭐야?”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것도 모두들 너무 잊고 있는 것이지.” 여우가 말했다. “그건 어떤 날을 다른 날과 다르게, 어떤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만드는 거야. 이를테면 사냥꾼들에게도 의례가 있지. 그들은 목요일이면 마을 처녀들하고 춤을 춘단다. 그래서 목요일은 경이로운 날이지!”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왕자』에서
중국의 대선사 조주 선사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 “달마께서 동쪽으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조주 선사가 대답했다. “뜰 앞의 잣나무!”
우리가 많이 들어본 선문답이다. 선문답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알쏭달쏭한 말인 것 같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도 평소에 이런 선문답을 하며 살아간다. 아기가 어느 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사랑이 뭐야?” 엄마는 아기 눈을 사랑스럽게 쳐다보다가 아기를 꼭 안아 주며 말했다.
“이게 사랑이야!”
아기는 단박에 알아들었을 것이다. 엄마 품에 안긴 자신의 마음을. ‘이게 사랑이구나!’
훌륭한 선문답이 아닌가? 아직 어리석은 중생인 한 스님이 “달마께서 동쪽으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아직 언어도 제대로 모르는 아기에게 사랑을 말로 설명할 수 있나? 꼭 안아주며 사랑을 체험하게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닌가?
조주 선사도 그 스님에게 그렇게 했다. 알지만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달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을 그 스님에게 체험하게 했다.
“뜰 앞의 잣나무!”
그 스님은 어떤 체험을 하게 될까? 당대의 최고의 선승, 조주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간절하게 대답을 기다리는 그의 눈앞에 보이는 ‘뜰 앞의 잣나무!’
그 스님의 눈에는 오로지 뜰 앞의 잣나무만 보일 것이다. 그때의 스님은 마음은? ‘물아일체(物我一體)’다.
뜰 앞의 잣나무와 그 스님은 하나가 되었다. 삼라만상이 하나인 상태, 바로 ‘달마께서 동쪽으로 온 까닭’이다.
달마는 사람들에게 이 ‘마음’을 깨닫게 하려고 인도에서 동쪽의 중국으로 온 것이다. 이 마음이 있으면 부처, 없으면 중생이다.
우리는 의례를 할 때 이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설날 아침, 제사를 지내며 바라보는 세상, 경이로운 세상이 아니었던가?
의례는 ‘어떤 날을 다른 날과 다르게, 어떤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만드는 마법’이다.
오늘은 어떤 날일까? 그날이 그날인 날인가? 경이로운 날인가? 우리 눈에 오늘이 그날이 그날로 보이는 건, 습관의 눈으로 봐서 그렇게 보인다.
우리가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 세상을 바라보면 어떻게 보일까? 언제 봐도 이 세상은 경이로운 세상이다.
차분하게 가라앉힌 마음, 우리의 본래의 마음은 경이로운 세상 그 자체다. 이 마음이 달마가 항상 간직하고 있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체험한 그 스님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이제 중생으로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그 마음을 잃지 않도록, 늘 깨어 있으려 노력을 할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고통으로 가득한 이유는 우리가 평소에 깨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소에 의례를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만나는 모든 것들을 무심코 지나치지 말고 알아차려야 한다.
머리는 항상 비워 두어야 한다. 온 몸의 감각을 열고 이 세상을 섬세하게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
빗방울이 똑똑똑 나뭇잎을 때린다
심심해서 나무에게 말 거는가 보다
- 이기철, <빗방울> 부분
깨어 있는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면, 이 세상은 늘 잔칫날이다. 거대한 놀이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