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천천히 샘터로 걸어가겠다
그는 목마름을 달래 주는 최신 개량 알약을 파는 사람이었다. 일주일에 한 알만 먹으면 다시 목이 마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저씨는 왜 이런 것을 팔죠?”
“시간을 절약할 수 있지.” “전문가들이 계산을 했어. 일주일에 53분이 절약된단다.”
“그럼 그 53분으로 뭘 하지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지.....”
‘나라면,’ 어린 왕자는 혼자 생각했다. ‘내가 그 53분을 써야 한다면, 아주 천천히 샘터로 걸어가겠다.....’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왕자』에서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 변두리로 멀리 간 적이 있다. 목이 말랐다. ‘아, 큰 일 났구나!’ ‘물을 가져 오지 않았어.’
도시의 변두리, 막막한 사막에서 사방을 헤매며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오아시스를 발견했다.
주유소의 한켠에 있는 음료수자판기. 1000원짜리 지폐를 넣고 내가 좋아하는 식혜를 꺼내 마셨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하며, ‘한 알만 먹으면 한동안 목이 마르지 않는 알약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럼 그런 알약을 먹고 내가 자전거를 타고 나왔다면, 자전거 여행이 좋았을까? 오늘 같은 ‘모험’을 할 수 있었을까?
‘사막 어딘가에는 반드시 있다는 오아시스’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 그런 알약을 먹고 시간을 절약하면. 우리는 무엇이 좋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어린왕자에게 알약 장사꾼은 말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지.....”
그러자 어린왕자는 혼자 중얼거린다. ‘내가 그 53분을 써야 한다면, 아주 천천히 샘터로 걸어가겠다.....’
불교에서는 삶의 목마름을 갈애(渴愛)라고 한다. 갈애, 우리는 항상 사랑을 갈망한다.
실제 목이 마른 경우는 얼마나 있는가?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이런 갈애를 인간의 욕망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원초적인 결핍이 있다. 어린 동물들은 스스로 먹거리를 찾아 실컷 먹지만, 어린 인간은 누군가가 그에게 먹이를 줘야 한다.
남이 먹여주는 먹이는 항상 무언가 부족하다. ‘실컷’ 먹지 못한다. 이 결핍이 인간을 한평생 ‘목마른 인간’이 되게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이것만 해 놓으면, 저것만 해 놓으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할 거야!”
그렇게 우리는 한 세상을 목마르게 보낸다. 갈애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린왕자가 우리에게 화두를 준다.
“지금 당장 아주 천천히 샘터로 걸어가라!” 우리가 세상을 잘 살펴보면, 세상은 온통 사막이고 사막 어딘가에는 항상 오아시스가 있다.
길을 가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 사물들, 잘 살펴보면 다들 오아시스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맑디맑은 샘물을 본다.
불교에서는 갈애의 원천을 집착으로 본다. 나의 육체에 대한 집착, 내가 본 것에 대한 집착, 나의 생각에 대한 집착... .
그래서 우리는 항상 무심히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의 본성(本性), 본래의 마음은 언제나 텅 비어 있다.
텅 빈 마음을 지닌 몸은 사막이면서 동시에 오아시스다. 우리는 어린왕자처럼 아주 천천히 샘터로 걸어가야 한다.
아주 천천히... . 이 세상 모든 것이 사막이고 오아시스이니까. 우리는 아주 천천히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사막도 애초에는 오아시스였다고 한다
아니 오아시스가 원래 사막이었다든가
그게 아니라 낙타가 원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사람이 원래 낙타였는데 팔다리가 워낙 맛있다보니
사람이 되었다는 학설도 있다
여하튼 당신도 애초에는 나였다
내가 원래 당신에게서 갈라져 나왔든가
- 김경미, <야채사(野菜史)> 부분
시인은 사막과 오아시스, 낙타와 사람, 너와 나... 애초에는 모두 하나였다고 노래한다.
인간의 원초적인 결핍이 삼라만상을 갈라놓았다. 자신에게 좋은 것은 선(善)이 되고, 자신에게 나쁜 것은 악(惡)이 되었다.
이 이분법에 한번 걸려들면 인간은 항상 목이 마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