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by 고석근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나는 이렇게 진심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사람도 없이 혼자 살아오던 끝에, 여섯 해 전, 사하라 사막에서 비행기 사고를 만났다.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 왕자』에서



조셉 캠벨 신화학자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일본의 나가사키에 두 번째 갔을 때, ‘우주 만물은 같은 근원에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첫 번째 갔을 때는 ‘비극’을 느꼈지만, 두 번째는 ‘음란함’을 느꼈다고 했다. 나가사키에 있는 박물관의 벽화와 그림을 보고서 왜 그는 음란함을 느꼈을까?


참혹했던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데... .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왜냐하면 적들은 서로 피해를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했다고 생각하는 일은 우리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그는 이어서 말한다. “이것은 매주 중요한 깨달음이다. 도덕적 가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주장하는 이야기들은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있는 신비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나가사키에 가 본 사람은 누구나 비극을 느낄 것이다. 그러다 도덕적 가치를 따질 수 있을 것이다.


‘왜 이렇게 된 거야? 미국과 일본 누가 더 잘못한 거야?’ 이렇게 따지다 보면, 결론은 나지 않을 것이다.


나가사키에는 휑하니 도덕적 담론만 남을 것이다. 이런 태도가 옳을까? 결국에는 삶의 허무감만 남을 것이다.

‘각자 살아남자!’가 삶의 신조가 되어버릴 것이다. 조셉 캠벨은 “모든 것의 중심에 있는 신비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의 군국주의와 미국의 제국주의가 맞부딪친 게 제2차 세계대전이다. 군국주의, 제국주의는 ‘나만 잘살겠다는 극한의 이기주의’가 낳은 괴물이다.


근대 산업화가 눈부시게 진행되면서, 물욕에 빠진 인간 자신의 중심에 있는 신비, 영혼을 잃어버렸다.


영혼을 잃어버린 괴물들끼리 싸우는 전쟁에서 ‘누가 잘했는가? 누가 못했는가?’가 중요한가?


‘어린 왕자’에서 주인공 나는 말한다. “이렇게 진심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사람도 없이 혼자 살아오던 끝에, 여섯 해 전, 사하라 사막에서 비행기 사고를 만났다.”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지 않고 살아가는 나,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서글픈 모습이다.


이런 사람들은 결국에는 서로 싸우고 죽이게 된다. ‘오직 나밖에 없는 사람’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싸움이 세계대전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의 구원은 어떻게 올까?


그런 사람들이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릴 때다. 사막에 불시착한 나,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된다.


가슴에서 울고 있는 ‘어린 왕자’를 만나는 것이다. 내면의 어린 왕자는 자신의 영혼이자 우주의 신비다.


따라서 괴물로 살아가는 우리는 항상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러다 위기를 만날 때, 영혼이 눈이 뜨이게 된다.


내면의 어린 왕자가 깨어나 그를 구원해 준다. 그래서 인류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인간은 자신을 성찰해야 하는 임무를 타고 태어났다. 그 임무를 다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괴물이 되어 남을 죽이고 자신도 죽이게 된다.



불도저가

깔아뭉갤 듯 달려들어도

내 집이고 무덤이야!

꿈쩍 않는다


- 이영식, <돼지감자는 고집이 세다> 부분



인간은 ‘돼지감자의 고집’을 잃어버렸다. ‘생각하는 동물’로 진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생각’에 의해 인간은 정신승리를 한다. 눈앞의 이익만 쫓다 끝내는 자신도 잃고 세상도 잃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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