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깨어있어라
문제는 늘 내 안의 한 생각이다. - 라마 크리슈나
함박눈이 내렸다. 새하얗게 쌓인 눈을 보며 마냥 즐거워야 할 텐데. 강의 갈 걱정부터 앞선다. 눈 내리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나이 들었다는 징조란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두터운 점퍼를 입고, 등산화를 신고, 조심조심 눈길을 걸어 차도로 갔다. 아, 역시 택시가 보이지 않는다. 큰 길로 가야 하나 보다. 한참을 걸어 큰 길로 가서 택시를 기다려 보았다.
멀리서 ‘빈차’라는 빨간 불을 켜고 택시가 오는 게 보였다. 아, 다행이야! 숨을 고르며 기다리는데, 한 아주머니가 건너편에서 달려오더니 내 앞에서 택시를 타려했다.
“아주머니, 제가 기다리고 있잖아요.” 그러자 그 분은 계면쩍어하며 옆으로 비켜섰다.
택시를 타고 방향을 얘기했다. 잠시 후 기사님이 넌지시 말했다. “그 아주머니에게 어디가시나 물어보지 그랬어요?” “네?” 그렇구나! 방향이 같으면 같이 타도 될 텐데. 미처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크게 병치레를 겪은 후에는 추운 날이나 피곤할 때는 극도로 예민해진다. 갑자기 어지러워지기 때문이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면 거기가 어디건 주저앉아 쉬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 같은 날은 오로지 내 한 몸만 생각한다. 오로지 목표만을 향해 간다. 다른 데 마음을 쓸 수가 없다.
하지만 ‘이 과오’를 내 몸이 약한 것으로 충분히 변명할 수 있을까? 지혜의 부족이다. 인문학을 강의하는 내가 삶 속에서 지혜를 터득하지 못했기에 일상 속에서 나는 그 상황에 딱 맞는 행동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현대사회는 큰 공장처럼 돌아가는 사회다. 우리는 시간에 맞춰 째깍째깍 기계들과 함께 돌아가야 한다. 그러다보면 우리는 어느 새 기계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우리는 기계가 되지 않으려면 일상 하나하나를 성찰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서 성자들은 “항상 깨어 있어라.”고 했다.
내가 삶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 했기에 택시 기사의 눈에는 훤히 보이는 것을 기계가 되어버린 나의 사고는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돌 앞에 앉아 울고 싶은 날이 있다
하루를 산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가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가
- 정영상,《돌 앞에 앉아》부분
다음엔 오늘의 과오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아주머니의 얼굴이 눈앞에 선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