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도 없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by 고석근

쓸데도 없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열망은 모든 것을 꽃피게 하지만 소유는 모든 것을 시들고 스러지게 한다. - 마르셀 프루스트



나는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한다. 시골에 가서 온종일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다니면 내 몸에서 풋풋한 들풀 냄새와 향그러운 흙냄새가 나는 것 같다.


봄이 피어나던 어느 날, 내 고향 상주 터미널에 내리자 나는 터미널에 항상 세워두는 자전거를 타고 시장으로 갔다. 순대국밥에 막걸리 한 병을 마시자 내 몸은 고향 냄새와 고향 사람들 사투리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식당을 나와 자전거에 올랐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페달을 밟았다. 자전거는 서쪽으로 향했다. ‘음, 남장사로 가볼까?’ 남장사를 생각하자 갑자기 내 몸은 들뜨기 시작했다. 자전거는 서보 냇가 자전거 길을 달렸다. 물에 비친 산자락. 이제 막 피어나는 들풀 냄새를 맡으며 내 몸도 함께 피어났다.


아, 언제 이렇게 되었지? 내가 자주 와 보던 큰 물웅덩이가 사라졌다. 마알간 물에 물고기들이 그득했던 큰 물웅덩이. 나는 옆에 앉아 오랫동안 황홀하게 바라보았었는데. 따갑던 햇살, 꼬리를 치며 헤엄치던 온갖 물고기들,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상주시내 근처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던 맑은 냇물이었는데. 상수도 보호구역이라 여기는 이렇게 보존되어있구나! 가슴이 마구 두방망이질 쳤었는데. 아, 이제 겨우 냇물이 얕게 얕게 흐르고 있구나!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 아직도 시골의 정취를 잊지 못한다. 마을을 가로질러 개울이 흘렀다. 하얗게 반짝이던 자갈들, 졸졸졸 흐르던 맑은 물들. 그 속에서 헤엄치며 놀던 온갖 물고기들. 지금은 복개되어 흔적조차 없다.

나는 그때가 그리워 자전거 타고 그런 곳을 찾아다닌다. 상주 시내 근처에서 그런 곳을 만났을 때의 환희란! 그런데 여기도 사라져버렸다. 나는 아, 신음을 토하며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았다.


남장사에도 옛날의 맑은 물은 없다. 초등학교 시절 자주 소풍 오던 것인데. 나는 터벅터벅 경내를 걸어 다녔다. 법당에 들어가 잠시 좌선을 했다. 나는 이렇게 고독하게 하는 좌선은 싫다. 맑디 맑은 개울 물 앞에서 선(禪)하고 싶다.


남장사를 나와 자전거를 타고 옛 마을로 들어갔다. 쓰러져가는 빈집들, 쓰러지다 만 돌담들을 하염없이 본다. 자전거를 산으로 몰아갔다. 산길로 산길로 올라가자 웬 논이 나타났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걸어서 논두렁을 걸었다. 그런데, 아, 고여있는 논물에 뭔가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도롱뇽 알들이었다. 오! 나는 쭈그려 앉아 그 도롱뇽 알들을 눈이 시리도록 바라보았다.


벅찬 가슴을 안고 내려오는데, 한 아주머니가 일하시던 허리를 펴시며 내게 말은 건다. “여기 땅 때문에 올라오셨어요?” “네?” 나는 의아한 눈으로 그 아주머니를 쳐다보았다.


아주머니는 혼잣말로 중얼거리셨다. “여기 개발한다고 해서 서울에서 땅 보러 왔나 했어요.” 오! 갑자기 내 주변의 산과 들이 황폐하게 변해버리는 환각을 느꼈다.



다랑논가에서

콩잎에 붙은 땅개비를 잡아

유리병에 담았느니라


도랑물가에서

송사리떼 들여다보며

갈잎배 만들어 띄웠느니라


〔......〕


그 조그만 것들 모두 어디로 갔나

쓸데도 없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느니라


- 심호택,《아무것도 모를 때》부분



4대강을 개발한다고 한다. 그 개발 현장엔 아직 가보지 못했다. 간다면 차마 바로 보지 못할 것 같다. 몇 년 전 한여름에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에 간 적이 있다. 강가에 다가가자 무슨 원시림 같았다. 키보다 높은 풀잎들. 나는 조심스레 풀숲을 헤쳐 갔다.


뱀들이 풀잎들 위를 스르르 지나갔다. 푸른 강물이 아득히 보였다. 어디 먼 대양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던 낙동강. 그 강이 마구 파헤쳐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느 순간 갑자기 천벌이 내릴 것 같아 온 몸이 오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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