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정신

by 고석근

법의 정신


악마를 이기려면 먼저 자신의 마음을 이겨라. - 채근담


평화로운 재래시장에 법치를 세우려는 사람이 있다. 시장 입구의 순대 국밥집 주인, 그는 밤이 되면 카메라를 들고 시장통 곳곳을 누비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법을 집행한다.

십여 년 동안 노점을 해온 미나리 장수 김씨, 노란 선 밖으로 삐져나온 진열대가 있는 가게들, 애초부터 설계가 잘못되어 있는 건물들...... 모두 사진에 찍혀 구청에 민원의 대상이 된다.

하루에 평균 4건씩 민원을 청구한단다. 공무원들은 그의 민원을 처리하느라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란다.

낮에는 평범한 식당주인, 밤에는 ‘법의 수호자’로 변신하는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는 너무나 억울하단다. 법치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법을 준수하자고 하는 사람을 왕따로 만들다니!

하지는 그는 ‘이름 지을 수 있는 이름은 참된 이름이 아니다’라고 한 노자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보아야 한다. 그가 ‘옳음’이라고 이름 붙인 그의 행위가 과연 ‘참된 옳음’일까? 끊임없이 성찰해 보아야 한다.

그는 자신의 ‘옳음’에 대해 확고한 신념이 있다. 딱딱하게 굳은 그의 표정,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그의 말투. 그런 굳어 있는 것들은 다 죽은 것들이다. 계속 성찰하여 부드럽게 되는 길만이 그가 살 길이다.

남의 행위에 대해 엄격하게 법,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는 제자가 있었다. 그녀에게 왜 자신은 그렇게 ‘선악’에 대해 민감한지 성찰해 보라고 했다.

몇 달이 지난 후 강의 시간에 그녀는 화들짝 놀라 말했다. “아, 오래 전 기억이 떠올랐어요. 아주 어릴 적 문방구점에서 인형을 훔쳐 엄마에게 크게 혼난 적이 있어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

그녀는 자신의 깊은 마음의 상처를 숨기기 위해 남에게 엄격한 선악의 잣대를 들이댔던 것이다.

이제 그녀는 서서히 남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겐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앞으로 ‘법의 수호자’는 어떻게 될까? 점점 더 자신을 수호하기 위해 법의 갑옷을 덕지덕지 껴입을 것이다. 그가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자신의 갑옷 무게 때문에 쓰러질 것이다.

쓰러진 그 자리에서 갑옷만 훌훌 벗으면 바로 일어날 수 있을 텐데, 끝까지 헉헉대다 숨이 끊어지지 않을까? 너무나 슬픈 일이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 서정주,《자화상》부분



시인은 왜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라고 생각했을까?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고 탄식하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고 선언했을까?


어떤 상처가 그를 딱딱하게 굳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했을까? 오로지 친일파의 한 길을 걷게 했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쓸데도 없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