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by 고석근

소통


언어는 기호의 소통이 아니라 명령어로 기능하는 말의 전달이다. - 질 들뢰즈


시골에서 살 때였다. ‘네 살 박이가 뭘 하나?’ 하고 여기 저기 기웃거려보다가 토끼장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아이는 토끼에게 풀을 주며 토끼와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 경이로운 광경을 한참동안 몰래 보았다. 원시인들은 동물과도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원시인의 정신세계를 가진 네 살 박이도 토끼와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말과 글자를 배워가며 인간은 차츰 이 신화적 능력을 잃어간다. 언어를 넘어서는 생각도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마음이 허전하다. 노자가 말했듯 ‘이름 지을 수 있는 이름은 참된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어는 ‘명령어로 기능하는 말의 전달’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소통은 언어를 넘어서는 세상에 있다. 그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우리는 누구하고도 마음을 나눌 수가 없다. 소통은 의지가 아니라 능력인 것이다.

소통이 현대 사회의 주요한 화두가 되어 있다. 우리는 그만큼 소통에 목마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소통의 의지는 항상 실패하고 만다. 우리가 ‘언어적 사고’에만 젖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고를 언어의 한계를 넘어 신화적 상상력으로 확장해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남들과 끊임없이 마음을 나눠야 한다.

아이들은 다른 아이를 만나면 방긋 웃으며 달려간다. 우리도 그렇게 타인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이 ‘아이의 마음’ 하나로 우리는 항상 세상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한다.



꽃 사이에 술 한 병 놓고 앉아,

친구할 사람도 없이 혼자 마시네.

잔을 들어 밝은 달에게 권했더니,

그림자까지 이제 셋이 되었다네.


〔......〕


내가 노래를 하면, 달은 서성거리고,
내가 춤을 추면, 그림자도 따라 추네.
이렇게 함께 놀다가, 취하면 흩어지네.
덧없이 논 우리 영원히 친구 맺었다가,
아득한 은하수에서 다시 만나세.

- 이백,《월하독작(月下獨酌)》부분


소통하는 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시인처럼 우리의 이성을 살짝 잠재워야 한다. 술기운이 오른 몸은 신화적 상상력이 깨어난다. 몸의 떨림이 되살아난다. 다른 사물, 생명체들의 떨림과 만나게 된다.


우주는 커다란 하나의 떨림이고 우리는 그 떨림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소통은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소통을 통해 이 세상의 진리에 이를 수 있다. 진리는 우리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다른 존재의 마음이 만날 때 꽃처럼 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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