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엄성

by 고석근

인간의 존엄성


인간은 고차원의 욕구를 지니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다. -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어느 ‘장애아 보호 시설’에서 아이들의 성문란을 방지하기 위해 부모 동의하에 ‘성욕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수술’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들으며 아득했다. 사실인가?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애완견을 중성으로 만드는 수술을 한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는데.

우리는 사람을 목적으로 보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도 여러 상품 중의 하나로 보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그것이 익숙해져 버렸다.

사장은 ‘사람을 쓸까? 기계를 쓸까?’를 저울질하는 게 당연해졌고, 노동자는 ‘내 몸값을 제대로 받아야지’하는 게 익숙해졌다.

사람이 어떤 값으로 매겨지는 순간, 우리는 지리멸렬해져버린다. 아무리 몸값이 높아도 더 높은 어떤 물건보다 하찮게 되어 버린다.

그 높은 물건을 가진 사람은 몸값 높은 그를 물건 값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건 당연한 게 아닌가?

‘어떤 연예인, 어떤 운동선수, 어떤 회사원, 어떤 강사...... ’가 연봉이 얼마라고 우리는 부러워하며 얘기한다. 얼마나 끔찍한 말인가?

이런 문화 속에서 우리는 이제 사람도 동물처럼 취급하게 된 것이다.

아마 소위 ‘선진국’에서는 장애아를 차마 이렇게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최소한 사람을 사람으로 보려는 노력을 할 테니까.

우리도 이제 사람을 사람으로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사람은 동물과 달리 ‘고차원의 욕구’를 지니고 있다. 먹고 마시는 낮은 차원의 욕구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 문화는 먹고 마시는 욕구를 최대한 부추긴다. 그 욕구가 전부인양 TV에서는 맛집, 먹거리 소개에 엄청난 시간을 할애한다.

이런 낮은 욕구만 충족하다 보니 우리는 고상한 인간적 가치를 잃어버렸다. 자신이 사람이라는 게 싫어진다. 그래서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게 된다.

잠시 바삐 걷던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오롯이 느껴보자. 자신의 몸과 자신의 몸이 삼라만상과 소통하고 있는 거룩한 시간을 느껴보자.

우리 몸은 아직 고상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타락해버린 생각’을 멈추고 오롯이 몸으로만 ‘살아 있음’을 느껴보자.

'살아 있음의 환희'를 느끼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그 자체로 숭고하고 거룩함으로 눈부시게 빛난다는 것을 오롯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 발이 싫어지고 내 손톱과
내 머리카락 그리고 내 그림자가 싫을 때가 있다.
내가 사람이라는 게 도무지 싫을 때가 있다.

- 네루다,《산보》부분



우리는 화들짝 놀라게 될 것이다. ‘세상을 다 얻고도 영혼을 잃어버린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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