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유감
이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다. - 프란치스코
인터넷 여행을 하다가 내 글을 발견할 때가 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내 글을 좋아 하는 분들이 있구나!’ 내가 만일 ‘유명작가’였다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났을까? ‘왜 남의 글을 함부로 도둑질 해?’
하지만 무명작가인 나는 남들이 내 글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그리고 남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큰 기쁨을 느낀다. 나는 글은 남과 더불어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글은 혼자 창조한 게 아니기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글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들은 서로 만나며 어떤 것들이 만들어지지 나홀로 탄생하여 존재하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무엇을 소유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말이 안 된다. 땅을 소유한다는 개념이 없었던 인디언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의 사고가 지극히 정상이 아닌가? 무엇을 소유하여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무엇을 소유하게 되면 거기에 온통 마음이 다 팔린다. 삼라만상과 교류하며 즐거워해야 할 마음이 ‘소유’에 마음이 꽁꽁 묶여 기분(氣分 - 氣가 잘 나눠分있는 것)이 안 좋게 된다. 마음(氣)은 골고루 잘 분포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명저들도 옛이야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들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 민족문학의 최고봉이라 일컫는 홍명희의 임꺽정도 옛이야기에 기초를 두고 있지 않은가?
책을 읽다가 아! 하고 감탄하는 문장들은 대개 그 책의 저자가 독창적으로 쓴 문장이 아니라 어디 다른 글에서 따온 글들이었다. 그 다른 글들의 저자는 또 어디서 그 문장을 얻었을까? 그렇게 따져 들어가면 글이라는 것은 누구의 소유가 될 수 없다. 글은 세상의 공기처럼 우리가 함께 마시고 나눠야 하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나는 책에서 만나는 명문장보다 더 뛰어난 문장들을 일상에서 가끔 만난다. 오래 전에 밤에 김천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고향 상주에 간 적이 있다.캄캄한 밤공기를 뚫고 나가는 버스 안은 답답했다. 오일장에 다녀오는 아주머니 장꾼들이 몇 분 있었다.
나는 궁금했다. 그들이 어떻게 할까? 나같이 먹물이 조금이라도 든 사람은 이런 상황을 묵묵히 견딘다. 그게 교양이라고 배워 몸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하지만 일상을 몸으로 살아가는 장꾼들은 다르다. 그들은 어떻게 하든지 이 경직된 상황을 풀 것이다.
왜 이 좋은 세상에 딱딱하게 굳어서 산단 말인가? 그들은 이 지극히 당연한 지혜를 몸으로 익혔다. 나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역시나 한 아주머니가 말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덜컹거리는 버스 소리에 리듬이 실린 그 말을 운전기사가 받고 운전기사가 공을 던지듯 말 한마디를 띄워 보내면 또 다른 아주머니가 받았다. 그들이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자 버스는 갑자기 배로 바뀌었다.
출렁출렁 바깥은 바다가 되고 버스는 배가 되어 신나게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칠흑의 바다를 떠갔다. 창밖으로는 등대 불이 반짝였다.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눈을 지그시 감고 즐기는 이 뱃놀이! 이 상황을 녹음하여 글로 옮기면 명문장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명문장은 누구의 것인가? 녹음한 자의 것인가?
글을 쓰는 작가라는 건 수집가일 뿐이다. 땅을 파서 보석을 얻는 것처럼. 세상이 온통 소유로 가득하지만 글만큼은 소유가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인터넷이 생기면서 좋은 글들을 인터넷에서 쉽게 만난다. 인터넷 여행하는 재미다.
그런 좋은 글들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하지만 그런 행위는 저작권 침해가 된다. 혼자 읽고 좋아해야 하는 이 이기주의! 글에서는 나눔의 즐거움을 얘기하면서 정작 삶은 자신만을 챙겨야 하는 이 모순!
‘그럼 전업 작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글쓰기에 대한 보상은 없어도 되는 건가?’ 이런 문제들은 국가 차원에서 연금을 준다든가, 기본소득제롤 통해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글을 소유하는 작가라는 건 끔찍하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자고 주장하면서 자기 글을 꼭꼭 가슴에 품고 돈을 받고 파는 게 맞는가? 무소유를 주장하는 글을 써서 소유를 하는 게 맞는가? 고매한 정신을 얘기하며 원고 한 매당 얼마를 계산해야 하는 게 맞는가? 아니 그 글들이 정말 그 작가의 것인가?
우리는 매일 표절 시비를 벌인다
네 하루가 왜 나와 비슷하냐
〔......〕
밤 전철에서 열 사람이 연이어 옆 사람
하품을
표절한다
- 김경미,《표절》부분
같은 공기를 마시니 하품도 함께 한다. 같은 언어 속에서 살아가면서 나의 언어라는 게 있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