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가슴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 미하일 엔데
어디선가 읽은 글이다.
제자가 스승에게 질문을 했다. “스승님, 어떻게 하면 시간을 아껴 쓸 수 있습니까?” 스승이 대답했다. “너는 시간의 부림을 당하지만, 나는 시간을 부린다. 어떤 시간을 말하느냐?”
미하일 엔데는 그의 동화 ‘모모’에서 말한다.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가진 것이 점점 줄어들었다.”
우리는 시간을 직선이라고 생각한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길고 긴 직선. 정말 그럴까? 이렇게 보는 건, 산업사회의 시각이다.
농업사회에서는 시간을 많이 들였다고 해서 생산량이 많이 늘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느긋하게 살았다.
그러다 산업사회가 되면서 시간을 들인 만큼 생산물이 나오게 되었다. 시간이 돈이 되었다.
그래서 ‘시간을 아껴 쓰자!’는 사고방식이 생겨났다.
모모에 나오는 회색 신사들은 시간을 아껴 쓰라는 산업사회의 전령사들이다. 공장 굴뚝의 회색 연기 칼라의 신사들, 산업사회의 주역들이다.
그들은 촘촘히 짜여진 스케줄에 따라 살아간다. 일과 여가 사이를 시계추처럼 바쁘게 오간다.
그들은 시간의 부림을 당한다. 고된 일을 하고, 여가를 즐기려 한다. 삶 자체가 이렇게 두 동강이가 나면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일을 하며 애타게 기다린 여가 시간은 생각만큼 신나지 않다. 계속 더 자극적인 것들을 찾아가야 한다. 몸과 마음은 지치고 가슴은 텅 비어 버린다.
삶이 생생하지 않으니, 기억 되는 게 별로 없다. 시간이 휙 지나간다. 누구나 어릴 때는 시간이 길었다. 모든 게 신기하여 만나는 모든 것들이 다 기억되었기 때문이다.
농사일을 할 때처럼 함께 노래를 부르며 느긋하게 일하고 함께 즐거운 식사를 하는 농부들은 삶을 누린다. 시간을 누린다. 시간을 부린다. 시간은 삶 그 자체가 된다. 시간은 가슴 속에 머문다.
어느 날 회색 신사가 나타나 말하는 인형을 보여주며 모모를 유혹한다.
‘모모는 싸움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것, 아니 벌써 싸움의 한가운데에 휘말려 들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말을 하는 목소리와 단어는 들었지만,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모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인형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인형은 모모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모모에게는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장난감이다. 그것들은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마법을 지녔다. 사람들을 저들의 신비 속으로 이끌고 간다.
하지만 말하는 인형은 처음에는 호기심을 끌지 모르나 차츰 시들해진다. 회색 신사들은 인형들에게 입힐 화려한 옷들을 보여주며 모모의 관심을 끌려고 한다.
이런 인형을 가진 아이들은 차츰 지루해진다. 그래서 더 나은 인형을 사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한다. 그들은 산업사회의 그물망에 결려든다.
그들은 어른이 되어 한평생 고된 일을 하고 여가 시간에는, 일의 대가로 받은 돈을 소비하게 될 것이다. 개처럼 돈을 벌어 정승처럼 돈을 쓰는 좀비가 되어버릴 것이다.
이런 삶의 비극을 예감하는 모모는 시간을 빼앗긴 사람들에게 시간을 되찾아준다. 모모는 우리 안의 영혼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 안의 자그마한 여자 아이의 목소리에 항상 귀를 기울여야한다. 그 아이의 귀로 우리는 삼라만상의 모든 신비로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삼라만상의 고귀한 일원이 된다.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지상에서 남은 나날을 사랑하기 위해
외로움이 지나쳐
괴로움이 되는 모든 것
마음을 폐가로 만드는 모든 것과 싸운다
- 신현림,《나의 싸움》부분
모모는 이 시대의 시인으로 부활한다. 우리를 대신해 ‘마음을 폐가로 만드는 모든 것과 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