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없다

by 고석근

죽음은 없다


그러나 그건 벗어 버린 낡은 껍데기나 같을 거야. 낡은 껍데기가 슬플 건 없잖아요...... .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 왕자』에서



고대 그리스의 철인 에픽테토스는 노예였다. 어느 날 주인이 무슨 일에 화가 나서 에픽테토스의 다리를 비틀게 했다.


그러자 에픽테토스는 침착하게 “주인님, 그러지 마십시오. 제 다리가 부러질 것입니다.”하고 말했다.


그 말에 더 화가 난 주인은 에픽테토스의 다리에 고문을 가하게 했다. 결국 에픽테토스의 다리는 부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에픽테토스는 담담하게 말했다. “거 보십시오. 계속 그렇게 하시면 다리가 부러질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언뜻 생각하면 에픽테토스는 바보 같다. ‘아니, 자기 다리가 부러지는데도 담담할 수 있어?’


천지불인(天地不仁), 천지는 인하지 않다. 그렇다. 천지자연의 이치는 냉혹하게 돌아간다.


비가 내릴 때는 사람들이 물에 떠내려가건 말건 비는 계속 내린다. 겨울을 싫어해도 때가 되면 겨울은 온다.

에픽테토스는 인간의 이성(理性)을 신뢰하는 스토아학파다. 그는 내면의 이성을 깨워 천지자연의 이치와 하나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 욕망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몸을 중시한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의 몸도 냉혹하게 천지자연의 이치대로 움직이지 않는가?


다리를 세게 비틀면 부러질 수 있다. 그런데 에픽테토스는 노예라 주인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


자신이 원하건 원치 않건, 주인이 다리의 생사여탈권을 지니고 있다. 그는 주인에게 천지자연의 이치를 말했을 뿐이다.


다리가 부러졌다고 울부짖어 봐야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리가 부러진 것을 냉혹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죽음과 고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죽음이나 고통이 아니라, 고통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렇다. 이것은 경험에 의해 알 수 있다. 나는 죽음 가까이 가 보았다. 전혀 죽음의 고통은 없었다.


다른 고통들도 크게 보면 마찬가지다. 담담히 고통을 받아들이면, 고통은 연기처럼 사라져 간다.


아이들은 언제 봐도 신명이 나 있다. 그들은 죽음과 고통에 대한 어떤 두려움도 없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는 지구별을 떠날 때, 몸을 훌훌 벗어놓고 자기가 태어난 별로 돌아가며 말한다.


“그러나 그건 벗어 버린 낡은 껍데기나 같을 거야. 낡은 껍데기가 슬플 건 없잖아요...... .”



나보다 무거웠던 죽음이 꽃핀다

까마귀 너니? 딱새니?

수족을 죽음에 괴고

삼천 년 동안 내 무덤을 파는 돌


- 조말선, <고인돌> 부분



죽음 위에 고여 있는 돌. 늘 우리 머리 위를 짓누르고 있다.


우리의 생각이 만들어 낸 돌, 생각이 생각에 더해지며 우리의 하늘에 늘 드리워져 있는 커다란 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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